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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MA 전후 여성작가 (3) 천재성과 광기 사이: 아그네스 마틴 Vs. 야요이 쿠사마 [Contemporary Artists]
  • sukie
    Jun 19, 2017

  • 천재성과 광기 사이에서

    MoMA 전후 여성작가 <3> 선(line)의 아그네스 마틴 Vs. 점(dot)의 야요이 쿠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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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통점이 많았던 화가 아그네스 마틴(왼쪽)과 야요이 쿠사마



    그들은 이방인 여성 화가였다.

    캐나다 출신 아그네스 마틴과 일본 출신 야요이 쿠사마는 1957년 뉴욕에 왔다. 마틴은 45세, 쿠사마는 28세. 그후 10년간 뉴욕 하늘 아래서 활동했다. 이들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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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nes Martin, The Tree, 1964, Oil and pencil on canvas, MoMA



    두 화가는 어릴 적 바람둥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정신질환자라는 또 하나의 공통 분모가 있다. 

    그들은 뉴욕을 떠났다. 레즈비언이었던 마틴은 1967년, 붓을 버리고 트럭 타고 2년간 여행을 한 후 뉴멕시코에 정착했다. 그리고, 정신분열증세로 전기쇼크요법까지 받으면서 작업하다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쿠사마는 1974년 일본으로 귀국한 지 3년 후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왕성하게 작업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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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yoi Kusama, No. F, 1959, Oil on canvas(left)/ Accumulation of Nets (No. 7), 1962, Collage of gelatin silver prints, MoMA


    마틴과 쿠사마는 동시대를 살면서 미니멀리스트 성향을 공유했다. 마틴이 선(line)에 집중하며 단색조의 선(zen)적인 캔버스를 추구했던 반면, 쿠사마는 훗날 원(dot)에 집착하면서 컬러풀한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아그네스 마틴의 모노크롬 회화가 'Less is More'라면, 야요이 쿠사마의 컬러풀한 캔버스는 'More is More'처럼 보인다. 지난해 10월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아그네스 마틴 회고전이, 2012년 7월 휘트니뮤지엄에서는 야요이 쿠사마  회고전이 열렸다.  



    선은 자연의 풍경, 캔버스는 순수와 행복

    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1912-2004)


    agnes-1966-diane-arbus.jpg 아그네스 마틴


    # 아그네스 마틴은 1912년 캐나다 사스카체완에서 스코틀랜드계 농부의 세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세살 때 아버지가 가출했고, 엄마는 아이들과 캘거리, 밴쿠버로 옮겨살았다. 하지만, 부동산업자였던 엄마는 아이들을 혐오했다고 한다. 아그네스가 여섯살 때 편도선을 제거해야했지만, 엄마는 돈을 쥐어주면서 전차를 타고 홀로 병원에 가라고 했다고 고백했다. 아그네스도 엄마를 평생 싫어했다. 엄마가 사망했을 때 아그네스는 "엄마가 없어져서 시원하다"고 악담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1931년 마틴은 워싱턴주 벨링햄에 사는 임신한 언니를 돕기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LA에서는 가정부로 일하며 돈을 벌었고, 미래 할리우드 거장 감독이 될 25세의 시나리오 작가 존 휴스턴(*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의 아버지)의 운전사로도 일했다. 이후 웨스턴워싱턴 사대와 컬럼비아 사대에서 공부한 후 뉴멕시코주 타오스의 섬머필드스쿨에서 수학했다. 컬럼비아대에서 선불교학자 D.T. 스즈키의 강연을 들은 후 동양사상에 심취했고, 작품에 드러나게 된다. 1950년엔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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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작업실 빌딩 옥상에서 아그네스 마틴(오른쪽부터), 잭 영거맨, 엘스워스 켈리.


    # 마틴은 1957년 레즈비언 아트딜러 베티 파슨스의 조언으로 뉴욕으로 이주, 사우스스트릿 시포트 인근 로프트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로버트 인디애나, 엘스워스 켈리, 애드 라인하르트, 제임스 로젠퀴스트, 레노어 타우니, 잭 영거맨 등과 어울렸다.  이 시절 게이 커플인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정크아트에도 영향을 받았는데 이 시절 그린 작품을 후에 대거 소각시키기에 이른다. 


    # 캔버스의 반복적인 선은 자연을 관찰하며 내재화해 나왔다. 


    "나는 하늘의 구름에 늘 주목하곤 했다. 한달간 하늘을 수시로 관찰하면서 반복이 되나 보았다. 구름은 반복되지 않는다. 삶도 반복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 격자무늬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나무의 순수성에 대해 생각하면서였다. 나무를 보면서 격자무늬가 생각났고, 그것이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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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열린 아그네스 마틴 회고전에서.


    # 아그네스 마틴의 전기에 따르면, 레즈비언이었던 마틴은 정신분열증세로 100여차례의 전기충격 치료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1950년대엔 풍경화, 구상 수채화, 초현실풍 유화 등을 작업했으며, 1958년 잭슨 폴락, 라인하르트, 마넷 뉴만 등을 소개한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 마틴은 1960년 사각형, 격자무늬와 캔버스 위의 연필선, 그리고 색조의 미묘한 변주를 구사하며 성숙한 시기로 들어가 추상표현주의의 교차로에 자리매김하게 된다. 기하학적이며 공간분해적인 언어로 완고하게 정형화된 미니멀리스트와는 차별화되는 정서적이며, 표현적인 미술의 힘과 결단적으로 수공적이며, 정교한 표면에 대한 심오한 신념으로 작업했다. 1966년 구겐하임뮤지엄의 'Systemic Painting'전에서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은 솔 르위트, 로버트 라이만, 도날드 저드 등과 같은 미니멀리스트 계열의 대표주자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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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열린 아그네스 마틴 회고전에서.

        

    # 1967년 추상표현주의 화가 애드 라인하르트가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살며 작업했던 건물은 철거에 들어갔다. 그리스계 조명 조각가 크리샤(Chryssa)와는 결별에 이른다. 애인과 친구, 스튜디오를 잃은 마틴은 붓을 버리고, 뉴욕을 떠났다. 고독과 침묵을 찾아 픽업 트럭과 트레일러로 2년간 서부와 캐나다를 여행한 후 뉴멕시코에 정착했다. 


    # 1968년 마틴은 뉴멕시코에 땅을 사서 점토로 직접 집을 지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집 안에 유일한 장식품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이 담긴 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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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멕시코에서 직접 집을 지은 아그네스 마틴


    # 붓을 놓은지 7년만인 1973년 마틴은 격자무늬와 평행선으로 구성한 30점의 실크스크린 'On a Clear Day'를 출간했다. 이듬해부터 회화로 복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단색화와 선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72인치의 정사면체 캔버스 시리즈로, 제목은 무제.


     “미술은 진정으로 당신이 풍경 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자유에 대한 느낌에 관한 것이다. 

    나의 경우는 자연에 대한 반응이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이다. 

    바다가 아름답고, 나무가 아름답고, 먼지 또한 아름답다. 아름다움이야 말로 나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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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열린 아그네스 마틴 회고전에서.


    # 마크 로스코의 명상으로 이끄는 색면화(color field painting)와는 달리 아그네스 마틴의 캔버스는 선(line)으로 젠(zen)의 경지로 인도한다. 마틴은 행복, 사랑, 순수, 자유, 아름다움, 완벽함이라는 '추상적인 정서(abstract emotions)'라 지칭했다. 마틴은 자신의 그림을 풍경화로 간주했다. 말면에는 '사랑' '축복' '행복' 등의 어휘가 제목에 붙여진다.


    # 마틴의 작품 제목엔 'Happy Holiday'(1999) 'I Love the Whole World'(2000) 등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신분열증세를 보여 전기쇼크 치료를 받기도 했다. 마틴은 "아름다움과 완벽함이란 같은 것이다. 이 둘은 행복감 없이 발생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마틴은 회화를 통해 명상과 행복을 추구했거나, 불행을 도피하기 위해 그림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agnes-martin-taos-1977.jpg 말년의 아그네스 마틴


    # 2004년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그네스 마틴은 50여년간 신문을 한번도 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마틴은 스코웨간 회화조각 메달(1987), 오스카 코코슈카상(1992),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1997), 국가공훈메달(1998), 여성미술코커스 평생공로상(2005) 등을 수상했다.


    # 2015년 필립스에서 'Untitled #7'(1984)가 420만 달러에 경매됐다. 



    냉정과 열정 사이: 캔버스, 퍼포먼스, 조각 

    야요이 쿠사마 Yayoi Kusama(1929- )

      

    y5.jpg 10살 무렵의 야요이 쿠사마


    # 야요이 쿠사마(草間 彌生)는 1929년 3월 22일 나가노현의 마츠모토에서 씨앗 도매사업을 하는 중산층의 5남매중 네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고, 때문에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쿠사마는 어릴 때 어머니에게 학대받고 자란다. 열살 무렵부터 물방울과 그물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기모노를 입은 여인 모습을 점박이로 땡땡 칠해서 가리곤 했다. 

     

    # 어릴 적 쿠사마는 종종 착란 증세와 강박관념, 그리고 때때로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자서전에 "어느 날 제비꽃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꽃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얼마 후엔 식탁보의 빨간 꽃이 수십개로 불어나서 식탁 밖, 벽으로, 천장으로 팽창하고 있었다"는 고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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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휘트니뮤지엄 회고전에서 야요이 쿠사마의 근작 



    # 1948년 교토로 가서 일본화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부터 전해내려오는 너무나 전통적인 화법과 도제 체계에 거부감을 느낀 후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다. 1950년대 마츠모토와 도쿄에서 전시회를 연 후 이윽고 해외로 갈 결심을 한다.


    # 어느날 중고책방 미술서적에서 본 조지아 오키프가 들어왔다. 오키프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화가였다. 쿠사마는 6시간 기차를 타고 도쿄의 미국 대사관으로 찾아가 인명사전에서 Georgia O’Keeffe의 주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화가로서 조언을 구합니다’. 당시 남편인 사진작가 스티글리츠 사망으로 상심했던 오키프는 친절하게도 답장을 보내왔다. “이 나라에서 화가로서 먹고사는 것은 힘들다…하지만...”  오키프의  편지 한장이 스폰서가 되어 쿠사마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시애틀을 거쳐 드디어 뉴욕에 왔다. 1957년, 그녀 나이 스물일곱살이었다. 



    y6.jpg 1957년 뉴욕 입성한 야요이 쿠사마


    # 뉴욕에 정착한 직후 뉴욕엔 추상표현주의가 풍미했다. 쿠사마는 마크 로츠코, 앤디 워홀, 도날드 저드 등과 그룹전을 열었고, 이들과 롱아일랜드 사우스햄턴 바닷가에서 함께 수영을 했다. 


    #1959년 뉴욕의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호평을 쓴 이는 화가 도날드 저드. 그 전시회에 나온 작품을 저드와 프랭크 스텔라가 구입해갔다. 저드가 소장했던 ‘무한의 그물 2(Infinity Net, No. 2)’는 2008년 뉴욕 소더비에서 510만 달러에 팔리며, 쿠사마를 생존 여성화가 중 가장 비싼 작가로 만들게 된다. 그리고, '무한의 그물'은 2011년 쿠사마 자서전의 제목이 된다. ‘무한의 그물(Infinity Nets, 1959)는 가로 30피트의 대형 회화로 그물과 점 모양으로 환각 상태를 표현한다. ‘무한의 그물’ 시리즈로 쿠사마는 잭슨 폴락, 마크 로츠코, 바넷 뉴만 등 당대 유명 화가들과 어깨를 겨누었다. 2008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쿠사마의 작품 ‘무한의 그물’은 510만 달러에 팔리며 생존 여성작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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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휘트니뮤지엄 회고전에서 야요이 쿠사마의 미니멀리즘.


    # 1961년 도날드 저드와 에바 헤세가 있는 건물로 작업실을 옮긴다. 친구가 된 헤세는 1970년 서른네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1960년대 쿠사마는 남근 모티프로 사다리, 구두와 의자 등을 감싸는 부드러운 조각을 발표한다. 1963년부터는 거울이 설치된 방에 네온색깔의 전구를 설치해 무한대의 우주에 있는듯한 환상을 주는 ‘거울/무한(Mirror/infinity)’ 시리즈를 시작했다. 앤디 워홀, 클레스 올덴버그, 조지 시걸 등과 나란히 전시를 하면서 팝아트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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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클린 브리지 위의 누드 퍼포먼스(1968).


    # 60년대 후반엔 뉴욕에서 아방 가르드 운동에 가담, 도발적인 해프닝으로 금방 리더가 된다.  바디페인팅 페스티벌 등 해프닝과 패션쇼, 반전 시위에도 가담한다. 젊은이들을 불러 MoMA(Museum of Modern Art) 조각 정원과 브루클린브리지 위에 나체로 세워놓고 퍼포먼스(1968)를 펼쳤다. 나체족들이 등장하는 ‘몸 축제(body festival)’를 열고, 몸에 컬러풀한 물방울을 그리면서 주목을 끌었다.  이들의 맨 몸뚱아리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물방물 무늬가 입혀졌다.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는 쿠사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물방울 무늬는 우주와 우리 삶의 에너지의 상징인 태양의 형태다. 

    또한, 고요한 달의 형태이기도 하다. 

    둥글고, 부드럽고, 컬러풀하고, 무의미하고, 미지의 물방울 무늬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무한으로 가는 길이다.”



    y9.jpg '거울/무한' 시리즈와 야요이 쿠사마.


    # 1966년 쿠사마는 제 33회 비엔날레에서 거울공 설치작 ‘자아도취 정원(Narcissus Garden)’을 소개한다. 황금 기모노 차림의 쿠사마는 관람객들에게 거울공을 2달러에 팔다가 비엔날레 측에 의해 중단됐다. 그러나, 쿠사마는 자신의 작품을 머천다이징한 최초의 아티스트로 평가된다. 그만큼 쿠사마는 ‘자기 홍보의 달인’이기도 했다. 


    # 1968년 자신이 주연하고 제작한 ‘자기 망각(Self-Obliteration)’은 벨기에 국제실험영화제와 메릴랜드영화제, 앤아버영화제에서 수상했다. 1991년 쿠사마는 무라카미 류 감독의 ‘도쿄 데카당스’에 주연을 맡기도 했다. 


     

    y11.JPG 야요이 쿠사마와 조셉 코넬


    # 쿠사마 생애의 연인은 10년간 동거한 뉴욕 작가 조셉 코넬과 10여년간 동거했다. 하지만, 성관계 없는 플래토닉 러브를 지속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 1973년 건강이 쇠약해진 쿠사마는 일본으로 귀국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미술계 분위기를 느끼고 아트딜러가 된다. 이즈음 단편과 소설, 시를 발표하며 작가로 변신한다. 1977년 데뷔 소설 '맨해튼 자살 중독(Manhattan Suicide Addict)'을 출간했으며, 1983년 ‘크리스토퍼스트릿의 매춘굴(The Hustlers Grotto of Christopher Street)’로 일본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한다. 



    yayoi-kusama-beloved-media-023.jpg 야요이 쿠사마


    # 이후 정신 이상이 생기자 1977년 자발적으로 도쿄의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내가 정신병원에서 사는 것은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 힘들다. 난 사람들 사이에서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병원에서 살지 않는다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없을 것이다. 

    내겐 환각 증세가 있다. 

    주변에서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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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휘트니뮤지엄 회고전에 설치된 '물 위의 개똥벌레'.


    # 1986년 프랑스 돌(Dole)의 시미술관에서, 3년 후엔 칼레의 ‘뮤제데보자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93년 옥스포드의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1993년 제 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거울로 장식된 방에 작은 호박이 있는 설치작에서 검은 무늬가 있는 대형 호박 조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호박은 쿠사마의 자화상으로 여겨지게 된다.

        

    # 1998년 MoMA, 2012년 휘트니뮤지엄, 테이트 모던, 2017년 허쉬혼뮤지엄(2-5월)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2002년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공헌훈장을 받았다. 2006년 국가평생공로상을 받았다.  2014년 크리스티에서 'White No. 28'(1960)가 710만 달러에 팔리며 생존 여성화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000.jpg *MoMA 전후 여성작가와 추상화의 공간을 만들다(4/15-8/13) 연재 순서


    #1 두 여성 조각가의 유년기와 트라우마 일기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1911-2010) & 에바 헤세 Eva Hesse (1936-1970) 


    #2 마초 추상표현주의와 여성 쌍두마차 

    조안 미첼 Joan Mitchell (1925-1992) & 헬렌 프랭켄탈러 Helen Frankenthaler(1928-2011)


    #3 초미니멀리즘과 화려한 캔버스: 천재성과 광기 사이

    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1912-2004) & 야요이 쿠사마 Yayoi Kusama(1929- )


    #4 유명 화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

    리 크래스너 Lee Krasner (1908-1984) & 엘레인 드 쿠닝 Elaine de Kooning (1918-1989)


    #5 무소의 뿔처럼...대형 조각의 에너지

    루이스 네벨슨 Louise Nevelson (1899-1988) & 리 본테쿠 Lee Bontecou(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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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AN MITCHELL, Ladybug, 1957 (left)/ Helen Frankenthaler, Trojan Gates, 1955,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전후 여성작가와 추상화의 공간을 만들다(4/15-8/13)


    The Museum of Modern Art

    개방시간: 월, 화, 수, 토, 일 오전 10시30분-오후 5시 30분, 금요일 오후 8시.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휴관. ♤입장료: 성인($25), 65세 이상($18), 학생($14). *금요일 오후 4시 이후는 무료. 11 West 53rd St. www.moma.org.



    000.jpg *현대미술의 시작과 끝: MoMA 하이라이트

    *아그네스 마틴 회고전@구겐하임

    *다큐멘터리 '에바 헤세' 리뷰

    *이상한 미술나라의 앨리스, 야요이 쿠사마

    *천재화가와 두 여인: 잭슨 폴락과 리 크래스너

    *앤 트루이트의 '교차로'@볼티모어뮤지엄

    *브라질 구체미술의 기수 리지아 파페 회고전@메트 브로이어

    *쿠바 여성작가 101세 휘트니뮤지엄 회고전

    *조지아 오키프의 옷장을 열다@브루클린뮤지엄

    *뉴욕 스토리 <255> 조지아 오키프의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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