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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추상표현주의와 여성 쌍두마차 

MoMA 전후 여성작가 <2> 조안 미첼 Vs. 헬렌 프랭켄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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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Painter'로 불리웠던 추상표현주의 화가 조안 미첼(왼쪽)과 헬렌 프랭켄탈러(오른쪽).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을 세계미술의 메카로 만들게 된 추상표현주의 화가군(abstract expressionists)을 뉴욕파(New York School)로 부른다. 1951년 5월 전설적인 아트딜러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가 기획한 61의 그룹전 '9스트릿 미술전(The 9th Street Art Exhibition)을 계기로 전후 뉴욕 아방가르드인 추상표현주의가 대세가 된다. 당시 'Lady Painter'로 불리웠던 뉴욕파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1992)과 헬렌 프랭켄탈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는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조안 미첼과 헬렌 프랭켄탈러는 부유한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의사의 딸과 판사의 딸은 남성 중심의 추상표현주의 계보에서 여성 쌍두마차였다. 이들은 동료 남성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미첼은 윌렘 드 쿠닝의 캔버스를 보고 쇼크를 받았으며, 프랭켄탈러는 잭슨 폴락의 기법에서 배워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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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헬렌 프랭켄탈러의 전시회에서 조안 미첼(왼쪽부터), 프랭켄탈러, 그레이스 하티건(Grace Hartigan).

 

미첼과 프랭켄탈러는 당대 플레이보이들과 결혼했고, 결별했다. 미첼은 출판업계 거장이 될 바니 로셋과 결혼 3년만에 종지부를 찍었고, 이후엔 프랑스로 이주해 캐나다의 저명화가 장-폴 리오펠과 25년간 동반자가 된다. 프랭켄탈러는 부유했던 추상표현주의 화가 로버트 마더웰의 세번째 부인이 되었으나, 마더웰이 독일 출신 사진가 레나트 폰솔트에 빠지면서 이혼에 이르렀다. 

 

 

조안 미첼 Joan Mitchell (1925-1992)

 

joan1933.jpg Joan Mitchell, 1933

 

"내 그림은 미시간 호수, 혹은 바다, 혹은 들판에 관한 느낌의 반복이다. 내 그림은 보다 시(poem)와 같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다." -조안 미첼-

 

 

# 1925년 시카고에서 피부과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조안 미첼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존(John)' 미첼이라 적었다가 '조안(Joan)'으로 바꾸었다.  

 

# 고등학교 시절 피겨 스테이터로 전국 대회에 출전해 4위까지 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중단했다. 열일곱살 때 첫 남편이 될 동창생 바니 로셋(Barney Rosset)을 만났다.  

 

# 매사추세츠주의 명문여대 스미스칼리지 영문과에 다니다가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의 장학금을 받으며 전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1947년 맨해튼으로 이주한 후 한스 호프만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강의 첫날 "그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기가 막혀서 그냥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안 미첼은 2천달러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와 프로방스로 유학갔고, 스페인과 이태리로 여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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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TCHELL, Ladybug, 1957, The Museum of Modern Art

 

# 초기엔 세잔, 칸딘스키, 모네, 반 고흐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엔 프란츠 클라인, 윌렘 드쿠닝, 그리고 캐나다 출신 화가로 연인이 된 장-폴 리오펠(Jean-Paul Riopelle)의 영향을 받게된다. 그림은 대개 2개의 패널을 합친 캔버스에 격력한 붓질로 그렸다. 그림을 "공간에 나타나는 유기체"라고 묘사했다.

 

# 유럽에서 반 고흐의 모네의 영향을 받았으며, 마티스의 팬이었다. 특히 반 고흐의 말기 작품들 중 '까마귀가 있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 1890)' 속의 죽음, 자살, 절망, 우울, 암흑을 간파하면서 반 고흐에 대한 오마쥬로 '새들은 없다(No Birds, 1987/88)'을 그리기도 했다. 자신의 말년에는 해바라기 그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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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브루클린에서 미첼과 로셋(왼쪽)/ 캐나다 출신 화가 장 폴 리오펠

 

 

# 1949년 고등학교 동창인 바니 로셋과 파리에서 결혼했다. 로셋은 미첼의 조언으로 출판사 그로브 프레스를 매입했으며, 헨리 밀러의 판권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들은 3년 후 이혼에 이른다. 이후 로셋은 네번 더 결혼한다.

 

# 1951년 추상표현주의 화가 그룹전 '9스트릿 아트쇼'에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한스 호프만, 그리고 헬렌 프랭켄탈러 등과 함께 전시됐다. 이듬해엔 뉴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 1952년 월스트릿의 시장 분석가이자 훗날 연방준비제도의장이 될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과 결혼했지만, 이듬해 결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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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미술관의 조안 미첼(왼쪽)과 윌렘 드 쿠닝 회화. 미첼은 드 쿠닝의 그림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Joan Mitchell(American, 1925-1992), Lac Achigan, 1973/ Willem de Kooning(American, born the Netherlands, 1904–1997), Untitled XIII, 1975, Yale University Art Gallery

# 1955년 조안 미첼은 캐나다 출신 화가 장-폴 리오펠(Jean-Paul Riopelle)과 보내기 위해 파리로 이주했다. 이들은 집과 작업실을 따로 두고 살면서 매일 식사를 함께 하는 생활을 했다. 처음엔 파리에서, 이후 모네의 집이 있는 기베르니 인근 베튜이유로 이주했다. 그리고, 1967년 어머니 사망으로 유산을 상속받아 2에이커의 부지를 매입한다. 

 

# 장 폴 리오펠과 25년에 거친 열정적인 관계는 1979년 끝났고, 조안 미첼은 불행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에 전념했다. 이때 그린 작품이 역설적으로 '장미빛 인생'(1979)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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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e en Rose", 197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 1984년 구강암 진단을 받아 턱뼈 제거수술을 받은 후 불안감과 우울증에 빠진다. 이후 흡연은 중단했지만, 여전히 음주벽은 여전히 지속됐다. 말년에 화풍이 변하면서 해바라기 시리즈에 몰두했다. 미첼은 "해바라기는 내게 사람들같다"고 말했다.  

# 1987년 시카고아티인스티튜트의 명예박사, 89년 프랑스 문화성 회화부문상을 수상했다. 

 

# 앙리 마티스를 찬미했던 조안 미첼은 한때 "내가 마티스처럼 그릴 수만 있다면, 나는 천국에 있을텐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92년 10월 MoMA에서 열리고 있던 마티스 전시를 보기위해 뉴욕에 도착한 직후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미첼은 10월 30일 파리의 아메리칸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 나이 6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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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조안 미첼 자화상(왼쪽)/ 2006년 국제화랑에서 열린 조안 미첼 회고전 포스터

 

# 1974년 휘트니뮤지엄에서 개인전이 열렸으며, 1982년 파리의 모던아트뮤지엄, 1988년 코넬대 허버트존슨미술관, 워싱턴 D.C. 코코란갤러리,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순회 회고전이 열렸다. 2002년엔 휘트니뮤지엄에서 회고전이 시작되어, 알라바마의 버밍햄미술관, 텍사스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아이오와 데스모이네스아트센터로 이어졌다. 2006년과 2008년엔 서울의 국제화랑에서 회고전과 드로잉전이 소개됐으며, 2016년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미술관과 독일 루드비히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조안 미첼은 괴퍅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후배작가들의 그림을 비싸게 사면서 지원하는가 하면, 미술도구를 사주거나 집에 불러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걸 즐겼다고 한다. 1993년 비영리기구 조안 미첼 재단이 설립되어 작가들에게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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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TCHELL, Ladybug(Detail), 1957, The Museum of Modern Art

 

# 2014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무제, 1960'이 1190만 달러에 낙찰되며 여성작가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했다. (*같은해 11월 조지아 오키프의 'Jimson Weed/White Flower No 1'(1932)가 4440만 달러에 팔리며 신기록을 세웠다.)

 

 

헬렌 프랭켄탈러 Helen Frankenthaler(1928-2011)

 

Helen-Frankenthaler-1956_MountainsandSea_unknownHelen Frankenthaler in front of Mountains and Sea (1952), 1956..jpg Helen Frankenthaler, 1956

 

"정말 좋은 그림은 한번에 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즉각적인 이미지다." -헬렌 프랭켄탈러-

 

 

# 1928년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독일계 유대인 엄마와 뉴욕주대법원 판사 아버지 사이에서 세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명문 사립 달튼에 다니면서 저명한 멕시코 화가 루피노 파마요(Rufino Tamayo)에게 미술 개인교습을 받았다. 

 

# 버몬트의 비닝턴칼리지 재학 중인 큐비즘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애인이었던 클레멘트는 큐비즘을 버리라고 종용한다. 얼마 후 독일에서 망명한 화가 한스 호프만(Hans Hoffmann)의 지도로 프랭켄탈러는 이론을 무시하고 공간과 컬러의 미스테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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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이스트햄턴 비치에서 잭슨 폴락(왼쪽부터), 클레멘트 그린버그, 헬렌 프랭켄탈러, 폴락 부인 리 크래스너.

 

# 1950년 뉴욕 파워 비평가였으며, 추상표현주의 후원자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를 만나 5년간 사귀었다. 이때 잭슨 폴락, 윌렘과 엘레인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데이빗 스미스를 만났다. 

 

# 그린버그는 프랭켄탈러를 잭슨 폴락의 이스트햄턴 작업실에 데려갔고, 이때 충격받아 큰 캔버스에 작업하게 된다. 당연히 이젤로부터 해방되었다. 폴락의 액션 페인팅에서 기법을 빌어왔다. 폴락이 물감을 거칠게 부어버리는 반면, 프랭켄탈러는 조심스럽게 부으며 캔버스로 서서히 스며들게 했다. 그 효과는 폴락처럼 대담하고, 역동적이지 않고, 대신 온화하며, 평화스러운 이미지다.

 

# 1951년 전설의 아트딜러 레오 카스텔리가 주최한 추상표현주의 화가 그룹전 '9스트릿 아트쇼'에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한스 호프만, 그리고 조안 미첼 등 51인의 작가로 초빙됐다. 

 

 

Frankenthaler_Helen_Mountains_and_Sea_1952.jpg Helen Frankenthaler, Mountains and Sea, 1952

 

# 프랭켄탈러는 1952년 바닥에 깔린 캔버스에 물감을 부어 제작한 얼룩진 회화(stain painting) '산과 바다(Mountains and Sea)로 주목을 받는다. 이 그림은 후에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와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등 색면파(Color Field school)에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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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미술관의 헬렌 프랭켄탈러(왼쪽)와 마크 로스코 회화. 색면화로 연결된다. Helen Frankenthaler, American(1928–2011), Island Weather II, 1963(left) / Mark Rothko(American, born Russia, 1903–1970), Untitled (Orange), 1957, Yale University Art Gallery

 

 

# 1956년 라이프(LIFE) 잡지가 '여성 화가들의 상승(Women Artists in Ascendance)'이라는 기사에 프랭켄탈러, 조안 미첼, 그레이스 하티간, 제인 윌슨을 다루었다. 프랭켄탈러는 자신이 남성 중심적인 뉴욕 미술계에서 굳이 '여성화가(lady painter)'인 점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여성화가라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 난 그걸 이용하지 않으며, 단지 그릴 뿐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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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데이빗 스미스가 폴라로이드 스냅 숏. 1959년 로버트 마더웰과 헬렌 프랭켄탈러.

 

# 1958년 학구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과 결혼한다. 마더웰 역시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다. 이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몇개월간 신혼여행을 했다. 뉴욕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파티도 자주 열며, 작업도 활발히 하면서 당시 미술계에서 록스타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미술계의 '황금 커플'로 불리웠던 이들은 딸 둘을 입양했으나, 1971년 이혼에 이른다. 

 

RobertMotherwell_ca-1980s-withRenatePonsold-1_R.jpg 1980년경의 로버트 마더웰과 새 부인 레나트 폰솔드

 

# 1972년 전 남편 로버트 마더웰은 독일에서 이민온 사진작가 레나트 폰솔드(Renate Ponsold)와 네번째 결혼을 한다. 당대 비평가 크레멘트 그린버그에 비견할 지성을 갖춘 폰솔드는 1950년대 뉴욕에 등장해서 마크 로스코, 웰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데이빗 스미스 등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그리니치 빌리지와 이들의 아지트 시다 태번(Cedar Tavern)에 드나들었다.  1959년 폰솔드는 필립 거스톤과 평생 친구였으며, 마크 로스코는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코스튬 갈라에 폰솔드를 파트너로 대동하고 나타났다. 1971년 10월 한 칵테일 파티에서 마더웰을 소개받은 후 열애에 빠졌고, 이듬해 여름 결혼,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서 살며 작업했다. 이들은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사이 트웜블리 등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다. 뉴욕 소더비는 오는 5월 16-19일 로버트 마더웰과 레나트 폰솔드 마더웰의 아트 컬렉션을 경매한다.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579724

 

# 1960년 뉴욕 쥬이시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이후 수채화와 판화 작업으로 전향하게 된다.  1969년 휘트니뮤지엄 회고전, 1985년 구겐하임뮤지엄 전시, 1989년 포트워스 MoMA, 뉴욕 MoMA, 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 투어 회고전이 열렸다. 

 

# 1980년대 중반 프랭켄탈러는 영국 로열발레의 세트와 의상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리고, 뉴욕대,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대에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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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엔 롤렉스(Rolex Datejust Watch) 시계의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 1994년 은행가 스티븐 뒤브룰과 재혼해서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저택에 살면서, 롱아일랜드사운드에 별장을 두고 작업했다. 2011년 백악관이 수여하는 문화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s)을 받았다. 2011년 12월 28일 캐나다 노바 스코시아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코네티컷 다리엔의 작업실로 돌아와 7x10피트짜리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유화물감을 부으며 작업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눈을 감았다. 

 

# 2013년 헬렌 프랭켄탈러 재단이 설립되어 문화예술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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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FRANKENTHALER, Canyon, 1965, The Phillips Collection

 

 

*MoMA 전후 여성작가와 추상화의 공간을 만들다(4/15-8/13) 연재 순서

 

#1 두 여성 조각가의 유년기와 트라우마 일기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1911-2010) & 에바 헤세 Eva Hesse (1936-1970) 

 

#2 마초 추상표현주의와 여성 쌍두마차 

조안 미첼 Joan Mitchell (1925-1992) & 헬렌 프랭켄탈러 Helen Frankenthaler(1928-2011)

 

#3 초미니멀리즘과 화려한 캔버스

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1912-2004) & 야요이 쿠사마 Yayoi Kusama(1929- )

 

#4 유명 화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

리 크래스너 Lee Krasner (1908-1984) & 엘레인 드 쿠닝 Elaine de Kooning (1918-1989)

 

#5 무소의 뿔처럼...대형 조각의 에너지

루이스 네벨슨 Louise Nevelson (1899-1988) & 리 본테쿠 Lee Bontecou(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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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TCHELL, Ladybug, 1957 (left)/ Helen Frankenthaler, Trojan Gates, 1955,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전후 여성작가와 추상화의 공간을 만들다(4/15-8/13)

 

The Museum of Modern Art

개방시간: 월, 화, 수, 토, 일 오전 10시30분-오후 5시 30분, 금요일 오후 8시.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휴관. ♤입장료: 성인($25), 65세 이상($18), 학생($14). *금요일 오후 4시 이후는 무료. 11 West 53rd St. www.moma.org.

 

 

*현대미술의 시작과 끝: MoMA 하이라이트

*아그네스 마틴 회고전@구겐하임

*다큐멘터리 '에바 헤세' 리뷰

*이상한 미술나라의 앨리스, 야요이 쿠사마

*천재화가와 두 여인: 잭슨 폴락과 리 크래스너

*앤 트루이트의 '교차로'@볼티모어뮤지엄

*브라질 구체미술의 기수 리지아 파페 회고전@메트 브로이어

*쿠바 여성작가 101세 휘트니뮤지엄 회고전

*조지아 오키프의 옷장을 열다@브루클린뮤지엄

*뉴욕 스토리 <255> 조지아 오키프의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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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2.02 18:27
    조안 미첼과 헬렌 프랑켄탈러란 두 화가를 소상히 소개했군요. 나에게는 생소한 화가들이지만 이미 그 두 여인의 이름과 작품은 널리 알려져 있네요. 2차대전 후 추상표현주의 화가군이 뉴욕에 정착해서 "뉴욕파"라는 이름이 생겼음을 컬빗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폴락을 위시해서 고흐까지 다양한 화가들의 영향을 받고 자기의 미술세계를 만들어낸 노력과 열정이 존경이 갑니다. 조안과 헬렌-두 여자 화가의 전시회를 꼭 관람할려고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두 여성화가와 뉴욕파를 알게해 주신 만능 백과사전인 뉴욕컬빗에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