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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까지

Alberto Burri: The Trauma of Painting


알베르토 부리: 상흔과 치유의 캔버스

로버트 라우셴버그, 아르 포베라에 영향



October 9, 2015–January 6, 2016

Solomon R. Guggenheim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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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영화계는 네오 리얼리즘(Neo-Realism) 작품들이 쏟아졌다. 세트 대신 로케이션 촬영, 프로 대신 아마추어 배우를 캐스팅해 부르조아 계급의 생활 대신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영화들이 속속 제작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 도시'(1945),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7)등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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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세계 대전을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포로까지 되었던 위생병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1915-1995)는 의사를 포기하고, 화가로 전향했다. 그리고 마치 캔버스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전쟁의 상흔을 표현하게 된다. 


구겐하임뮤지엄이 10월 9일부터 열고 있는 '알베르토 부리: 상흔의 회화(Alberto Burri: The Trauma of Painting)'는 부리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엿볼 수 있는 회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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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부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해 열리는 이 회고전은 한(恨)과 화병((火病)이라는 정서에 익숙한 우리에겐 더 공감하게 되는 전시회다. 태워지고, 너덜너덜해지고, 꿰매진 캔버스에서 부리가 겪었던 깊은 슬픔이 묻어 나온다.


제 2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선 정형화한 추상에 반발하는 비정형의 미술  '아르 앵포르멜(Art Informal)' 운동이 일어났고, 뉴욕에선 잭슨 폴락을 위시한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전쟁포로가 되어 텍사스에 억류됐던 알베르토 부리는 유럽과 미국의 미술풍조를 결합했다. 

부리는  캔버스에 붓을 사용하지 않고, 마대(삼베), 자루, 플라스틱 등을 찢고, 태우고, 땜질하고, 꿰매면서 대신 콜라쥬와 아상블라쥬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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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지망생이었던 알베르토 부리에게 캔버스는 육체이자 정신이었을 것이다. 부리는 마치 수술을 집도하듯이 상흔을 꿰매고, 깁고, 보듬고, 그 반복적인 과정, 수행을 통해 자신도 치유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캔버스는 전쟁터나 그로 인한 상처의 메타포이며, 찢겨진 마대는 총탄의 상흔과 피(blood)를 상징하는 듯 하다. 금속에 드러나는 꿰맨 실자국은 부서진 뒤 더 강해지는 인간성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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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부리는 미국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에게 영향을 주었다. 라우셴버그는 1952년 로마에서 부리를 찾아간 후 유사한 방식으로 넝마같은 '콤바인 회화(combine painting)'를 시도하면서 유명해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알베르토 부리의 영향은 지대했다. 

부리는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와 함께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 엔리코 카스텔라니(Enrico Castellani), 네오-다다와 프로세스 아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빈곤의 예술' 아르테 포베라 운동에 영향을 준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남게 된다.


구겐하임 회고전은 내년 1월 6일까지 이어지며, 3월 5일부터 7월 3일까지 독일 뒤셀도르프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관(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으로 순회 전시된다.



Alberto Burri (1915-1995)                          


000000000ALBERTO BURRI (2).jpg Photo: Aurelio Amendola

1982년 치타 디 카스텔로 스튜디오에서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1915년 이탈리아 치타 디 카스텔로(Città di Castello)에서 태어난 부리는 페루지아대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1940년 10월 12일 이탈리아가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틀 후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리비아로 파병됐다. 1943년 튀니지아에서 전쟁포로로 잡혀 텍사스의 겐스빌에 억류된다. 이 시기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46년 본국으로 송환된 후 이탈리아의 패배, 전후의 비참한 상황, 그리고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표현할 수 있는 미술을 생업으로 택하게 된다. 1947년 로마에서 풍경화와 정물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부리는 미국의 무용수 민사 크레이그와 결혼, LA와 이탈리아를 오가면서 작업했다. 



Alberto Burri: The Trauma of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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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시간: 일-수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45분,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45분, 목요일 휴관,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