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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메트뮤지엄 '이집트의 르네상스' 중왕국 걸작전 
Masterworks from Ancient Egypt’s Middle Kingdom


October 12, 2015–January 24, 2016
Metropolitan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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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에는 멘투호테프 2세(King Mentuhotep II)의 웅장한 사암(沙巖) 석상이 서있다.
Statue of Nebhepetre Mentuhotep II Standing in the Jubilee Garmen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고대 이집트 유물 전시회는 뮤지엄의 블록버스터를 보장한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1978년 '투탕카멘의 보물(Treasures of Tutankhamun)'전으로 사상 최대의 방문객을 이끌었던 바 있다. 메트뮤지엄엔 1978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4개월간 총 127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중 절반인 63만3000명이 타지에서 온 관광객이었고, 뉴욕시에 당시 1억 1천만 달러의 경제효과를 가져다주었다.


00000king_tut_300.jpg King Tut (Tutankhamon)


1976년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시작되어 미 대도시를 순회했던 투탕카멘 전시는 리처드 닉슨과 화약고 중동, 이집트와의 긴장을 푸는 열쇠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 국가간의 냉각을 용해시켜주는 촉매제가 됐던 것이다.

10월 12일 메트뮤지엄에서 개막되는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걸작전(Masterworks from Ancient Egypt’s Middle Kingdom)은 어린 이집트왕 투탕카멘의 번쩍번쩍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고대 이집트 유물전으로서의 히트쇼를 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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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e of Senwosret III as a Sphinx,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0월 5일 언론 프리뷰에서.


이집트의 고왕국(Old Kingdom, 2686 BC-2181 BC)은 왕과 신이 동격으로 파라오의 중앙집권적인 전제군주의 힘이 막강한 시대였다. 북부 멤피스를 수도로 피라미드가 건축됐던 영광의 시기다.

그러나, 북부 이집트는 왕권의 붕괴로 100여년간 분열의 시기를 겪게 된다. 이즈음 남부에서 멘투호테프 2세(Mentuhotep II)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통치력을 장악하며 11대 왕조을 세우고, 12대 왕조인 아메넴헤트 1세(Amenemhat I) 통치 하에 남북 이집트가 통일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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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Colossal Statue of Senwosret I Shrouded, Medelhavsmuseet, Stockholm


통일신라처럼 통일 이집트 중왕국(기원전 2030-1650년)은 문화, 종교, 정치적으로 융성했던 르네상스 시기다. 

이번 특별전엔 메트뮤지엄 소장 유물을 비롯 이집트 유물 컬렉션이 톱 클래스인 브루클린뮤지엄, 루브르뮤지엄, 대영박물관 등 37개 뮤지엄에서 대여해온 걸작 23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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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e of the Sealer Nemtihotep Seated, Staatliche Museen zu Berlin, Ägyptisches Museum und Papyrussammlung


아델라 오펜하임(Adela Oppenheim) 큐레이터에 따르면, 이집트의 중왕국 시기 파라오(pharaoh) 왕들은 확신에 찬 젊은 시절 모습을 담고 있다. 

중왕국 시기에는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오시리스(Osiris) 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 시대의 조각은 입방체의 블럭같은 형상이 특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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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ument of Sihathor,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지하세계로 여행을 지속한다고 믿었다. 
지하세계로 가면, 사람은 오시리스 신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오시리스가 좋은 사람으로 판정하면, 사자의 영혼은 육체와 결합, 낙원에서 영생을 지속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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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미술은 죽은 자, 내세를 위한 미술이었다. 따라서 뮤지엄이 아니라 묘지 안에 영원한 생명을 위해 현세를 재현할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의 고분 벽화. 원근법이 결여되어 있으며, 인체에서 머리는 항상 측면, 어깨와 몸통은 정면으로 혼용해 그렸다. 왜 그랬을까? 인물의 입체감을 묘사하기 위해서였다면, 큐비즘의 효시가 될 수도 있겠다.



Highlight: Masterworks from Ancient Egypt’s Middle Kingdom 

이집트 조각상의 코는 왜 깨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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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브루클린뮤지엄, 그리고 루브르와 대영박물관, 토리노의 이집트뮤지엄에서 이집트 조각을 여러 점 보았다. 이번 메트의 이집트 중왕국의 걸작전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수많은 이집트 조각의 얼굴에서 코가 깨졌을까?

기자의 스핑크스를 비롯 이집트 조각 95%의 코가 깨져있다고 한다. 누가 코를 부수었을까?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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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인 파라오의 정체를 은폐 위한 백인들의 음모설

이집트의 흑인들이 파라오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위해 증거를 인멸했다는 주장이다. 

나일강 상류엔 검은 피부의 이집트인들이 거주했고, 하류엔 백인 피부색에 가까운 이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초기 이집트의 파라오는 흑인이었으며, 후의 파라오 피부색은 백인에 가까웠다는 것. 기원전 3100년 경 제 1 왕조로 이집트가 통일되었으며, 인종 갈등이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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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Colossal Statue of Senwosret III, The 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Missouri


현재 서구의 메이저 뮤지엄은 물론 이집트에서도 부서진 코를 복원하면서 '석형수술'을 통해 흑인 특성을 제거하며, 정체성을 변형하고 있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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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Léon Gérôme's Bonaparte Before the Sphinx, 1867–1868

#2. 나폴레옹의 파손
스핑크스의 코는 나폴레옹이 대포알 연습을 했다는 설이다.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1798-1801) 병사들이 대포를 쏘아 코를 깨트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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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슬람 파손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라교도는 코를 부수면 영혼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14세기 이집트 농부들이 수확을 방해할 홍수를 막기위해 스핑크스에 막대한 공물을 제공하는 것을 본 수피 무슬림 무하마드 사임 알 다르가 분노해서 파손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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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ssal Statue of a Pharaoh Seated, Staatliche Museen zu Berlin, Ägyptisches Museum und Papyrussammlung

#4. 중세 기독교인들 파괴
이집트 점령 후 이교도 우상들의 생명 원천을 차단하기 위해 석상들의 코를 깨트렸을 것이라는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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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도굴꾼들의 파손
왕릉을 파헤치던 도굴자들이 영생을 기원했던 석상의 코를 깨면 부활하지 못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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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풍화작용설
비바람과 눈에 의해 가장 부서지기 쉬운 부분이 자연스럽게 파손되었을 것이라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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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센과 세누스트레트의 유골함. Canopic Jars of Nebsen and Senwosret, Ny Carlsberg Glyptotek, Copenhagen


이집트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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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Statue of a Queen or Princess as a Sphinx, Brooklyn Museum


고대 그리스나 로마와는 달리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은 남성과 거의 동등한 법적, 경제적 권리를 누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이집트가 성별 보다는 계급에 의해 차등화된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리와 특권은 계급간에만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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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여성들은 왕위에도 올랐다. 
기원전 18세기의 아호테프(Ahhotep) 여왕은 북부 지입트의 반란세력인 하이크소스와의 전쟁 때 이집트 군대를 이끌고 격파해 이집트 최고위 군사 훈장을 세차례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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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왕조의 하트셉수트 여왕은 강력한 왕권을 누리게 된다.
22년간 재위기간 중 전쟁 대신 오벨리스크 등 건축물에 치중해 평화로운 시기였다. 하트셉수트는 가녀린 모습이었지만, 인조 콧수염을 달고 남장하며 통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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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ate Figur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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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ale Leonine Figurine Holding Snakes, The Manchester Museum,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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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s of Bracelets and Anklets, Cowrie Shell Girdle of Princess Sithathoryune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집트 중왕국 역대 파라오 Middle Kingdom (2030 BC-1650 BC) 

제11 왕조                                                                

Mentuhotep II.jpg Mentuhotep II-met.jpg 네브페페트레 멘투호테프 2세 (2030 BC-2000 BC)
테베의 왕자로 이집트를 통일한다. 멘투호테프는 '테베의 전쟁신이 만족하신다'는 뜻. 테베의 서안 다이르 엘바리에 무덤을 건설했다. 

Mentuhotep III.png 시안크카레 멘투호테프 3세 (2000 BC-1988 BC)

Mentuhotep_IV_Lepsius.jpg 네브타위레 멘투호테프 4세 (1988 BC-1981 BC)
암살당해 11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로 남으며, 무덤이 발견되지 않는다. 멘투호테프의 재상이었던 아메넴헤트가 반란을 일으켜 12 왕조를 세웠다는 것이 정설이다.


제12 왕조                                                                                  

amenemhet1.jpg Amenhet1-met-relief.jpg 아메넴헤트 1세 (세페테피브레) (1981 BC-1952 BC)
이집트를 재정비하고, 수도를 이트토위로 이전하며 자신에게 저항하는 세력들과 전쟁을 했다. 아들 세누스레트를 왕위에 올려 공동 통치제를 도입했으나, 리비아와 전쟁 중 암살당한다. 리슈트의 피라미드에 묻혔다.

Senusret I.jpg 000Senwosret I.JPG 세누스레트 1세 (크헤페르카레) (1961 BC-1917 BC)
왕권을 강화하면서 이집트의 문학과 건축 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렀던 르네상스. 오벨리스크도 세웠다. 선왕처럼 죽기 전 아들 아메넴헤트 2세를 공동 통치자로 지명했다.

Sphinx of Amenemhat II.jpg 아메넴헤트 2세 (누브카우레) (1919 BC-18b5 BC)
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전쟁으로 해외로 세력을 펼치면서 다슈르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Senusret I-2.png 세누스레트 2세 (크헤페페레) (1919 BC-1885 BC)
주요 토지를 개혁하며 오아시스 시대인 파욤에 건설을 촉진했다. 라훈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한다.

Senusret III.JPG 000Senwosret III.JPG 세누스레트 3세 (크하카우레) (1878 BC-1840 BC)
누비아를 식민지화하면서 요새를 확장 건설했으며,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를 착공했다. 귀족의 권세와 특권을 무효화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게 된다. 

Amenhotep III-britishmuseum.jpg Amenemhat_III.jpg 아메넴헤트 3세 (니마아트레) (1859 BC-1813 BC)
중왕국의 부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아버지 세누스레트와 공동으로 통치했다. 시나이에 원정대를 보내기도 했다.

AmmenemesIV.jpg 아메넴헤트 4세 (마마크페루레) (1814 BC-1805 BC)
왕조가 쇠퇴하던 시기. 누이 소베크네페루에 의해 축출(?)된다. 

sobe2.jpg 소베크르네페루(소베크카레) (1805 BC-1802 BC)
아메넴헤트 3세의 딸, 아멘넴헤트 4세의 누이로 12왕조의 여왕에 등극했지만, 통치 4년만에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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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뮤지엄 그레이트홀에 전시된 중왕국의 파라오 아메넴헤트 2세(추정)는 2011년 베를린 뮤지엄에서 10년 대여해온 유물. 
Amenemhat II, Ägyptisches Museum und Papyrussammlung, Staatliche Museen zu Berlin - Preussischer Kulturbesitz


전시 관련 프로그램                                                

oooAncientEgypt_Poster.jpg Photo: Anna‐Marie Kellen
Head of a Statue of Amenemhat III Wearing the White Crown, Ny Carlsberg Glyptotek, Copenhagen


-Studio Workshop (10/17, 24 10:30 a.m.–4:30 p.m.)
Statement Pieces: Jewelry Design Fee: $215(워크숍 재료비와 뮤지엄 입장료 포함. 학생할인 가능)

-Sunday at the Met (10/25 3:00–4:30 p.m.)
Ancient Egypt Transformed: The Middle Kingdom

-Conversation with a Curator or Conservator (11/5 11:00–11:30 a.m.)
Conversation with a Curator—Haremhab as a Scribe of the King, Egyptian Art

-K–12 Educator Program (1/9, 2016, 1:00–4:00 p.m.)
Educator Workshop—Ancient Egypt: The Middle Kingdom Fee: $25

-Symposium (1/22, 10:30 a.m.–4:30 p.m.)
Middle Kingdom Egypt: New Discov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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