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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 김희자: 겨울, 카타르시스 [김희자/바람의 메시지]
  • sukie
    Jan 31, 2018
  • 바람의 메시지 (28) 검은 난로


    겨울,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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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rry Creek Golf Links, Riverhead, Long Island  Photo: Wheiza Kim


    이제 곧 2월인데도 추위가 아직 매섭게 지켜서서 버티고 있다. 겨울은 우울의 유리병 속에 갖힌 새와 같은 느낌을 갖기는 할지라도 깊은 자기성찰을 하기엔 참으로 좋은 때이기도 하다. 자신이 병에 갖힌 새임을 알아 차리는 순간 병 속에서 이미 나온 것이라 하던, 알고보면 쉽기가 세수하며 코 만지기만 하다던 화두에 대한 선사의 얘기를 떠올리게하는 냉랭하면서도 고요한 맑은 아침이다.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진정한 자아를 만나 심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겨울만이 인간에게 줄수있는 특별한 은혜라 생각한다.


    내가 을씨년스런 춥고 우중충한 날이 계속되어 심한 디프레스 상태가 되어 나도 모르게 엄마같은 큰 언니에게 전화로 칭얼대면, LA로 당장 이사오라는 어김없는 명령에 가까운 권유가 따른다. 여기의 봄에 환희스레 피어오르는 체리 브라슴 시즌처럼 LA에는 지금쯤 가로수가 보라색 자카란타로 흐드러지고, 부겐베리아의 붉디붉은 담장들. 쭉쭉 뻗어 구름한점 없는 하늘을 향해 오른 팜 츄리들, 게티 뮤지엄이나, 헌팅턴 파크의 건강하고 울창한 인공숲과 정원들을 떠올리며 지금쯤은 동백 페스티발이 곧 시작되리란 걸 아는지라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생각이 무시무시한 코브라 대가리처럼 치민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해걸이를 하며 LA로 놀러가서 몇주씩를 보내고 오면, 오그라든 몸은 풀리는 느낌이나, 마음은 계절 습관의 리듬을 잃고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며 둥둥 떠다니다가 어정쩡하니 봄을 맞는게 싫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도로 주저앉는다. 마치 오이지를 담을 때 큰돌로 눌러두지 않으면 오이가 둥둥 뜨게 되어 뭉그러져 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어쩌면 내 감정순환의 습관에 겨울은 오이지를 누르는 돌과 같은 역할인가 싶다. 실한 봄은 돌덩어리 같은 엄한 추위 아래서 숨을 죽이며 속을 잘 발효하는 시간을 가져야지, 그렇지 않고 둥둥 뜨면 바람이 든다. 잘 버텨내어야만이 아작아작하고 탱글탱글한 봄의 새싹과 꽃 봉오리를 맞아들일 수가 있다. 겨울창 밖을 내다보면 멈추고 쉬는 동면 속에서 각자의 생을 위해 알차게 내면의  성숙을 도모하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며 너는 과연 그러한가고 내게 묻는다.


    눈이 내리는 날엔 그 우아하면서도 고요한 함박눈의 몸짓이나, 거센 바람에 몰아치는 폭설의 격정적인 윤무를 통한 몰입과 정화의 카타르시스는 겨울날이 아니고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다. 나는 어떤 겨울 액티비티도 결코 좋아하는 게 없으나. 황량한 겨울바다 걷기와 눈덮힌 골프장을 걷기가 유일한 나의 겨울 활동이다. 해변에 심한 북서풍이 몰아치지 않는 한 마스크를 끼고 내려가 걷곤 한다. 갈매기 떼들이 점령한 영토에 내려서면 겨우내 깨먹은 조개껍질이 쌓여있어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게 된다. 침입자라도 나타났다는듯 까악대고 소동을 벌이며 나를 놀래키게 하지만 곧 경계 태세를 풀고, 나도 새들도 모두가 바람을 향해 서서 조용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평화로움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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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dian Island Walking Course, Riverhead, Long Island  Photo: Wheiza Kim


    그리고, 동네 주변에 드라이브로 5분 이내의 거리에 몇개의 골프장 있어 겨울 산보엔 최적이다. 3월까지는 시즌 오프인지라 골퍼는 물론이지만, 관리인들 조차도 없어 허락을 받을 일도 없다. 오후 햇살에 더욱 곱고 우아한 황금빛 도는 잔디 위를 걷노라면 내가 이 세상에 보내져 산다는것이 참으로 행복한 거라는 느낌이 가득히 스며든다. 눈이 온 날이면 하얀 솜이불을 펼친듯 포근하고 매끈한 눈 위에 두툼한 코트를 입은 고목들이 검은 그림자들을 거느리고 서있고, 그 사이를 걸으면 마치 사열을 받는듯 즐겁다. 냉랭하고 정갈한 공기와 부드러운 발길을 느끼며 걷노라면,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가 온 몸을 돌아 독소를 다 뱉어내서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호흡과 일치가 되어 요가를 하듯이 걸으니 피로하거나 시간이 가는 걸 알지 못한다. 인디안아일랜드 골프장은 베이를 접하고 있어 백조들과 캐나디안 구스들의 서식지여서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광인 곳이다. 나는 늘 그러한 산보를 통해 살아움직이는 한 엑스트라임을 즐긴다. 그리고 영감을 얻고 글이던 그림이던 그 속에 존재하는 내 마음과 풍광을 구성한다. 이 세상의 어떠한 무엇도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얘기하려는 게 내 의도이기에 그렇다.

                                      

    여튼 골핑을 하며 공을 따라다니며 점수에 집중하며 걷기보다야, 목적 없음에 한가히 산보를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낙이 있을까하며 늘 겨울이 있어 빈 골프장이 마련되니 이 계절에 또 감사한다. 어쩌면 골프하는 이들이 들으면 이해할 수 없다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간이 아까워서 골프하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일상생활에 더해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도 늘 시간이 모자라는지라, 하루종일 공을 따라 다니기를 하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을 보면 축복받은 자들이라 여겨진다. 누군가는 골핑은 도를 닦는 것이라고도 하던데, 글쎄 어쩌면 진정한 무심으로 행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몇명씩 짝을 지어 떠들어 데며 채점카드를 들고 게임 점수를 잘 내보겠다는 욕심 내려놓고 여유자적하며 대기를 즐기는 골퍼들이 몇이나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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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군 탱크같은 장작 화로


    지치도록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난로 앞에 않아 장작을 화로에 채워넣고서 차 한잔을 마실 때의 충만감은 극한 냉기와 뜨거움이 호흡으로 교차되며 몸과 마음이 잘 순화되는 느낌이다. 겨울이다 하면 파이어 플레이스가 떠오르는 게 여기 지역 사람들의 겨울 실내 풍경이다. 가끔 이웃들을 방문 하면, 영혼의 상승을 위해 불을 숭배하며, 그들의 성물인 불 타는 화로를 바라보며 명상 기도하는 조로아스트 교도들이라도 된건가 싶게 불꽃을 무심히들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화로 속에 장작이 타는 불길을 바라보노라면 무념무아의 경지에 다다르는 길로 인도되는 마력을 느낀다. 아마 모든 상념을 태워버리는 위력이 있기에 불을 숭상하는 종교도 생겼을 테지 싶다. 그 교인들은 아직도 중동지역엔 많이 남아 있다는 다큐멘타리를 본적이 있다.


    요즘은 실제로 장작을 때는 집들은 많지가 않고 다들 모양만 장작을 쌓은 가스 난로로 대치되어 있다. 우리집 역시 개스 맨틀피스를 두고도, 장작을 뗀다. 어쩌다 손님으로 온 이들은 장작 타는 냄새를 맡으며 참으로 낭만적이라고들 말을 한다. 특히 한국 가족들이 놀러오면 고구마 구워먹기 추억을 위해 봉사를 하며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그 난로를 관리하며 사는 사람에겐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리고, 나는 검은 캐스트아이언으로 만들어진 독일군 탱크 같은 난로를 볼 때마다 싸고 강하고 안전위주의 기능 그 자체를 위한 몰취미한 남편의 안목과, 그와 연결된 스트레스 때문에 볼 때마다 화가 치밀 때가 많다. 


    4~5년 전에 보일러 기름값이 갤런당 $4로 오르던 해에 남편이라는 자의 독선으로 나와 의논없이 저지른 어이없는 일이었다. 설치한 그 이듬해부터 기름값은 내려가기시작해서 3년째는 장작값이 훨씬 비싸지고 말았으니 무용지물이 된 화로를 보며 너무 급히 동조한 세계 오일시장에 대한 예견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혼자서 중얼대곤 했다. 나는 무슨 말도 달지 않았다. 그러나 천정과 지붕 밖으로까지 연결된 시설물인지라 빼도박도 못하는 한 애물단지로 집 한가운데 버티는 존재가 되었다.


    여튼 내가 미국이라는 곳, 그것도 21세기에 어릴적 전쟁 후의 가난함과 연결되어 회상되는 기억 속에나 있던 장작난로를 때게 될 줄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지. 노마드(nomad )족을 표방하는며, 월스트리트의 스탁 딜러로 억만장자가 되어 버몬트주 수십 에이커 땅에 만스퀘어 피트나 되는 통나무 성곽을 짓고 사는 아들이 있다. 그의 아들집 방문한 후 발동된 그 남자의 발작적인 행위로 밖엔 해석이 되지 않기도하고, 더하여서 옛날옛적의 매사추세츠 스키장 근처에 있던 베케이션 하우스에 대한 향수가 믹스되어, 무경험의 내가 무얼 알랴며 의논할 일도 없다며 밀어부친 재난이라 불러 마땅할 짓을 벌였던 거다. 언제나 아들과 아버지는 영원한 무의식적인 경쟁 관계라고들하더라만, 내 남편의 질투심이 만든 큰 실수라고 밖엔 말할 수가 없다. 


    그의 아들은 모든 비지니스를 인터넷으로 처리하고 한달에 한번 정도의 직원회의와 단합대회를 집에서 하는지라 그 멋진 상황이 당연지사로 보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증권가의 살벌한 경쟁과 무서운 인간들의 냉혹함에 시달리기를 25년 넘게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이 싫어진다 한다. 사실 사람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혀서 일으키는 스파이크에 덴거일테지만.... 꿈을 이룬 것에 높이 찬양을 해주었다. 비록 세상이 바뀌면 그의 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자못 의심스러운 면이 많았지만, 서양 사람들로 부터 배운 돈 안드는  립서비스의 극치를 실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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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입시키기


    기존 파이어플레이스를 두고 고급스럽고 분명 대단한 값을 지불했을 앤틱 캐스트아이언 화로에 불 때기를 즐기는 모습에  질투심이 발동된 내 남편의 작위에 나는 당하고 말은 거다. 나는 언젠가부터 허리를 잘못쓰는데다가 허리 써포트를 두르고 해도 장작 나르기는 중노동인지라 허리에 통증이 심해 통증약이 없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집안의 먼지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뿐아니라 기관지가 나쁜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온갖 불평과 본색을 드러내며 그가 주장하는 낭만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검은 난로는 전쟁터에 폐기된 탱크처럼 2년간 휴면상태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후회를 받아들이고 무심해질 시간도 됐으련만, 난로와 눈이 마주치면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란 걸 알아두라구 하며  버티고 서서 내게 설교를 한다.


    드디어 지난 폭설이 온날 정전이 되어 보일러도 개스 난로도 작동할 수가 없는 상황을 맞아 원시로 돌아갈수 밖에 없는 날이 왔다.  '마지막까지 죽지않고 버티고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라고 마치 서바이벌 게임에라도 참여한듯 남편이 환호를 지르는 날이 온거다. 새옹지마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구다 하며 지천으로 쌓인 잘 마른 장작을 가져다가 승리자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며칠동안 장작때기를 하며 그 지긋지긋하던 게 체리나무 타는 냄새에 감싸이며 좋아지는 건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그야말로 화로는 말없이 오랜 동면 상태로 있었건만, 내가 변한 것이란걸 알아 차렸다. 시간이 약이라던 말, 세상에 용서 못할 일은 어디 있겠는가 싶고, 그 와의 논쟁도 다 잊고 그때를 다 용서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 못난 장갑차 같은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또 그건 무슨 마음의 조화인가 싶다. 감정이란 그렇게 그렇게 바닥에 있는 돌들을 넘고, 바위를 피해 흐르는 강물과 같은 거라 하더니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구나 하는 걸 다시 새삼스레 배우게 된다.    


    아침마다 욕망이라는 검은 화로속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꿈과 야망이라 불릴 장작들이 형체도 무게도 없는 허망한 재로 쌓여있음을 보며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재를 퍼내노라면, 남은 화로의 온기 속에, 타오르던 불꽃이 마치 여러개의 붉은 혓바닥을 가진 악마처럼 날름 거리며 하던 말들이 남아서 맴돈다. 낡은 법칙은 다 태워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세워라. 생의 절대적 긍정을 외치며 나처럼 자유롭게 춤추며 생을 즐기라. 그 허허로운 에코를 쓸어내고, 매일 하루의 새 불씨를 만들며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않아 없다. 그 없는 둘에 매달리느라 오늘을 어리석게 망치지 말고, 바로 지금을 만끽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게 진리라는 걸 다시 일깨워운다. 

                  

    나무등걸 아래 재를 부으니, 바람에 실려 나즈막히 퍼지는 노래소리가 들린다.


    나는 모든 고통과 번뇌 망상을 태워 무(無)가된 재.

    유한한 불길의 멈춤에서 무한까지도 긍정하는

    영원 회귀의 길을 따라 나는 대지로 스며들 터이다.

    그리고 더 강하고 아름다운 새 생명을 창조해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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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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