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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 김희자: 에로스와 타나토스(Eros et Thanatos) [김희자/바람의 메시지]
  • sukie
    May 03, 2017
  • 바람의 메시지 (20) 삶과 죽음의 양면성


    에로스와 타나토스(Eros et Thana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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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we call it love, 40"x36", 1994, acrylic on shape canvas


    살이 백만 광촉이 넘어도 엎어놓은 독 속은 밝힐 수가 없다고 했다. 스스로 그독이 엎어져 있음을 알아 차렸으면, 바로 세우던가, 깨어버리던가 하지 않는한 어둠에서 나올 수가 없다. 그 행위가 깨침이요, 생의 용기이다. 내가 방황하던시절 나의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자신의 삶을 밝고 바르게 만들어 살아 보려는 의지를 가진 자에게나 통하는 얘기일 꺼다.

    사람들이 억울하고 혼자 뿐이라는 느낌의 독 속에 들어가 자기연민과 슬픔에 원망이라는 소금을 더해가며 자기 자신이 죽음의 검은 액 속에 절여져 가고있음을 알아 차리지 못한체 변해가는 경우를 가끔 접한다. 오랫 동안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 눌려서 습관이 되어 결국은 깊은 우울이라는 검은 간장같은 상태로 발효되듯하여 본질을 상실하고 병자로 전락되어버린 사람들을 본다. 거의 정신병자라할 만한 지경이 됐음에도 충고를 받아들이고, 그 어둠의 독에서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고집스러움을 보며, 한 생각만 달리하면 누르고 있는 작은 부정의 돌멩이 하나만 치워 버리면, 긍정의 빛이 어둠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텐데 싶어서 안타깝게 느낄 때가 많다.

    그들은 대개 고독과 좌절과 함께 소외감 때문에 모종의 죽음의 욕망으로 쩔은 중독증을 얻게된 소위 예술하는 친구들 중에는 그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정말 투쟁하는 용기로 살아가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아트 히스토리 속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비록 망상증으로 업 엔 다운을 하지만, 그래도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어떨 땐 코미디가 일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멋지게 살고 싶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만이라도  감사하게 여기며 늘 응원해준다. 주변에서 가끔  삶을 자유의지의 승리인양, 고통으로 부터의 해방구로 여기며 자살하는 이들을 보며, 행복하다는 삶의 질이라는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으며, 과연 죽음은 자유의지에 의한 인간의 권리로의 끝맺음이라 할 수 있을지라는  문제를 다시 한번 숙고하게 된다.

    늘 한 여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며, 그 친구에 대한 슬픔 때문이기보다는 내 속에  깊게 숨어 고여있던 죽음의 검은 심연에 하나의 큰 돌이 던져진듯 소용돌이를 친다. 나 역시 여느 시절 자살을 하는 것보다는 한 세상 안태어난 셈치고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한국을 떠났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죽어서 삶으로써만이 진정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낯설고 물선 이국으로 떠났던 내 슬픈 자화상이 파문으로 일그러지며 끝간 데 없이 가슴 속으로 퍼진다. 부와 명예랄 것도 없지만, 그동안 쌓은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져버린 지라 다 내려놓고,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도, 알 리도 없는 곳에서 가난하게 살아도 대자유로 살아 보리라는 희망의 행진이었다. 물론 그 당시 자살을 해버릴까, 아니면 출가를 할까 양갈래 길에 서서 스스로  택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책임져야 하는 장애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버겨움으로 내 앞에 줄을 서있었다. 주립 대학에 방문작가로 신청하여 온지라, 주어진 과제들이 있었기에  소위 사유적 컬츄럴 쇼크와 언어장벽, 아이덴티티 문제에 끼여 숨을 쉬기 조차 힘든 덫에 걸려 순간 마다를 이겨내기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치아가 들뜨곤 했다. 나는 스트레스나 힘겨운 일을 해내고 나면, 항상 치아가 헐거워지며 부어오르다가 심하면 곪아서 큰 일을 치루곤 하는 체질이다. 결국은 그 삶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무의식적 행위가  2년간이나 구혼을 하던 열살 연상의 미국인과 재혼을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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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sunset lasting thousand of year, 15"x23", 1994, acrylic on shape canvas  

    나는 한국에서 결혼이라는 새장에서 도망쳐 나온 새였는데, 다시 새장으로 들어 간거였다. 다이아몬드로 만든 새장일지라도 새장은 새장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만 까마득히 잊어버린거다. 첫 결혼이야 인간이면 누구나 면할 길 없을 에로스적인 본능의 그물에 걸려드는  거라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두번째 결혼은 소울 메이트 찾기라고들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마치 현명한 계산이라도 한 양했지만, 결국은 바보짓 임을 터득하게 됐다. 

    이국생활의 곤혹함이 해결되는 것 보다는, 산넘어 또 산, 거기에 늘 마음에 상체기를 얻는 가시 투성이 길이 내 앞에 열린 길이었다. 생소하고 문제라고 여겨지는 삶의 수면 위에 떠있는 잎과  꽃들은 결코 그냥 걷어 내어지는 부유식물이 아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생 나무들이구나 하는 걸 터득했다.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되돌아 서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또 다시 이혼을 한다고  더 나은 삶이 약속될 것도 없다는 정산서가 나를 더욱 꼼짝할 수 없는 비겁한 인간으로 만들고 주저앉게 만들었다.

    매일같이 떠오르는 불만의 부유물을 걷어내는 일상이, 삶이 더라는 생각과 시각적 프레임을 어떤 포커싱으로 짜느냐에 따라 행과 불행의 픽쳐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터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이가 50이 다 되어 언어습득 능력이 거의 굳어서 열망은 하늘을 날고, 능력은 땅을기는 격차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썻던 기억이 가장 자존심을 상하게 했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언어구사능력이 완벽하냐면, 그 또한 결코 아니다. 영어로 꿈을 꾸고 있다면 언어장벽은 넘어 선 거라고들 말을 한다. 그리고 많은 이민자들은 의사소통만 원활하면 되지 영문학을 하려는가 라고 서로 위로들을 한다.                                      

    하튼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옛날 이야기다. 오늘, 친구 모임에서 ESL class에서 만났던 인도 여인이 다시 자살로 세상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시절에 만나 동병상련의 친구들로 지금도 가끔씩  만난다. 그 영어 클래스는 40대 전후의 성인반으로 모국에서 전문직을 가졌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회화능력 향상을 위한 클래스였다. 지금도 자주연락하며 만나는 친구가 둘이 있다. 하나는 루마니아에서 국어 교수였던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다. 모국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이 나라에 와서 부자인듯한 ,그러나 결코 대단한 부자는 아닌 것이 드러난, 20살 위의 '노인'이라 불러야할 남자와 재혼을 하였었는데, 최근에 세상을 떠났고 새 젊은 보이프렌드와 황혼을 즐기며 살고있다. 

    그녀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았던 탓인지 자유로움과  물질에 대한  갈증이 대단했다. 사람들이 황태자의 연인 다이애나와 닮았다고들 한다며 머리도 늘 금발로 물들이고 나르시즘 속에서 산다. 늙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헬스크럽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목 주름 성형수술을 해가며 긍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 소위 대학교수였던 그녀는 저능아들을 보살피는 township job 으로 여유 돈을 벌며, 만약 나라면 자존심이 상해 굶을 지라도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인데, 돈만 벌 수 있다면 직업에 아무런 선입견도 없다. 서양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합리적 생각일테지 하고 늘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중년이 넘은 친구는 러시아에서 심리학 박사 공부 도중에 사회주의에 진저리가 나서 도망쳐나왔다고 한다. 철저히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실천하며 이를 악물고 살고 있었다. 중학생 아이를 데리고 매우 어렵사리 단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고생고생 끝에 결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해 냈다. 남편은 원하던 대학의 리서치 영구직을 얻었고, 그녀는 박사학위와 미국의 사이코 테라피 자격증을 취득하여서 오피스를 열었다. 주 상담 고객은 러시아에서 이민온 문제 많은 이들이다. 그리고 아들은 의대를 나와 병원 근무를 하고 있다. 한때 그들은 영주권 문제로 추방당할 곤혹을 당하기도 했다. 그게 무슨 이유였는지 듣고도 다 잊어버렸는데, 9/11사건 후 이민 신청자들의 서류가 컴퓨터에서 다 삭제되어버린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그 당시 몹시 곤욕을 치루었던 시절이었다. INS에서 무슨 특별 프로젝트로 로터리를 하여서 당첨이 되면 영주권을 주는 케이스가 있었다. 그들은 이민신청 자체를 할 수 있는 자격 자체가 없는 불법상황인 경우였는데, 그 특혜에 당첨이 되어 구제되어 영주권을 받고서 God Bless America!!를 되내며 기뻐서 엉엉 울던 모습이 기억난다. 각자 마다의 문제를 안고서 그것과 싸우며 이겨내기 위해  짧은 영어화화로 서로를 위로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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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where do we go?, 22"x22" x4", 2009, acrylic on wood with mirror


    그 중에는 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지만, 인도 여자가 있었다. 남편은 대학 근처에서 멋지고 큰 인디안 레스토랑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도에서 전문직을 가진 일 없는 가정 주부였던 것 같았다. 우리 클래스에  합류된 이유가 우리반 강사의 지연으로 받은 특혜가 아닌가 싶었는데, 알아 듣기 어려운 옛날 영국식 발음으로 가끔씩  여러가지 힘든 대가족의 속사정을 털어 놓곤 했다. 우리는 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으면서도, 유식한 친구들이 인도의 사회제도에 대한 상식을 바탕으로 열심히 들어주었다. 그러면서도 공주병에 걸린 여성인 것 같다고 삐죽대곤 했다. 아마도 인도에서는 매우 높은 계급의 부잣집 출신의 여성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래스가 끝나고, 그녀가 내게로 다가와서 자기는 자살을 할꺼라고 말을 했다. 나는 뭔가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 아니냐고, 왜 그러냐고  다구쳐서 물었지만,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다가 그녀를  픽업하러온 차가 와서 헤어졌다.          

    그런 이튿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니 웅성웅성 시끄러웠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그녀가 LIRR 열차에 투신을 해서 죽지는 않은듯하고, 앰뷸런스에 실려갔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아침 출근 시간대여서 모든 출근자들 에게 큰 불편을 주었다고 비판하는 친구에서부터, 자살을 한 이유들에 대한 온갖 추측들이 오갔다. 나는 전날 그녀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나서 가슴이 철렁내려 앉으며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나는 너무도 황당하고 놀라서 강사에게 어제 그녀로 부터 들은 얘길 했더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며 너무 길티할 것 없다는 거다. 자기 자신도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이라고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남편이 그녀가 집에서 자살을 여러번 시도했다는 얘길하며 특별히 신경을 좀 써달라는 부탁을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운전도 못하는지라 집에서는 꽤 먼 곳인 열차에까지 가서 뛰어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하며, 마치 일어날 일이 일어난듯이 담담해 했다.

    어달 후 퇴원할 무렵 두 다리가 절단되어 휠체어를 탄 그녀의 병문안을 친구들과 함께 가게 됐다. 우리가 본 어떤 때보다 환한 미소를  띠며, 와줘서 고맙다고 하며 자긴 너무나도 행복하다며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니 외롭지도 않고, 자기 남편도 시어머니도 자기한테 매우 부드럽고, 아이들도 자주  곁에 와줘서 행복하다 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불구를 댓가로 쟁취한 행복감이라는것도 있구나 생각하며 오래 행복하라고 위로 해주었다. 그 후로 나는 그 대학가를 떠나 멀리 이사를 했기에 가끔 만나는 친구들의 얘기로만 가끔 안부를 전해 들었다. 결코 공주처럼 모셔질 행복은 지속될 리가 만무했고, 바쁘고 힘든 이민 생활 속의 가족들에게 귀찮은 존재일 뿐임을 터득하면서, 자신이 무용지물임을 알아 갔었으리라 여겨진다. 

    수년을 불구와 우울병으로 골골대며 버티다가 드디어는 스스로 손목 동맥을 끊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언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더욱 가슴이 쓰리다. 밉고 원망스런 모든 식구들에게 멍에를 씌우고 복수하듯 갔을 그녀는 죽음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의 끝이며, 해방이라고 생각했을 꺼다. 이민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따라온 것인가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삶을 받아 들이는 태도가 달라짐을 다시 목격하게된 일이다.
                                                                
    심리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nger)는 이런 의식, 무의식적 파괴본능이 자살에 이르게하는 것을 정신역동적인 동기라고 말했다. 죽이고자 하는 욕망, 죽임을 당하고 싶은 소망, 죽고 싶은 욕망 등이다. 모든 자살의 경우 이 세 가지 동기가 모두 나타나지만, 어느 하나의 동기가 죽음을 부른다. 그리고 죽이고자 하는 욕망과 죽임을 당하고 싶은 소망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지만, 죽고 싶은 소망은 나이가 들면서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자살하고 싶은 심리가 점점 증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살을 개인의 파괴적 본능으로 본다면 누구나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개인은 잘 살아가다가도 일이 잘못 되거나 막다른 처지가 되면, 다시 일으켜 세워보려는 생각을 내기보다는 ‘쓸어버리고 끝내 버리려는 심리’가 작동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민사회의 교회가 항상 매우 번성을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신도 믿으려는 자에게나 존재한다. 그 인도 여인의 경우나, 유교적인 가부장  관습으로 굳어진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에선, 자식과 부인까지 동반해서 자살하는 케이스를 가끔 신문에서 접하게 된다. 그럴 때면,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 조건들을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들은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라 불렀다. 이 죽음 본능인 타나토스와 대립되는 것이 바로 에로스인데, 이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생존본능이다. 일반적으로 에로스와 타나토스(Eros et Thanatos)는 서로 굳게 융합되어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간은 두 가지 본능, 즉 에로스에 이끌려 성행위와 출산으로 생명을 영위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타나토스의 영향을 받아 죽음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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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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