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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자락 토리노(Torino/Turin)의 느림보 정신

2006 동계 올림픽... 와인, 트러플, 누텔라, 비첼리...예수의 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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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산에서 2시간 거리 토리노, 첨탑이 있는 건물이 영화박물관 몰(Mole)이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PyeongChang 2018)을 앞두고 이탈리아 토리노(Torino/영어명 튜린 Turin)가 떠오른다. 로마처럼 관광객들로 부산하지 않고, 밀라노처럼 패셔니스타들로 복잡하지 않은 고도. 하지만, 토리노는 스포츠 도시라기 보다는 역사의 도시, 영화의 도시, 그리고 맛의 도시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한 토리노는 2006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이와 대조적으로 토리노의 다운타운은 궁전(Palazzo)과 고풍스런 건물들이 밀집되어 역사의 향기를 품어낸다. 토리노는 로마처럼 번성하지는 못했지만, 16세기 이탈리아 사보이 왕국의 수도였다. 그리고, 1861년부터 1864년까지 이탈리아 최초의 공식 수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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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산 카를로 광장 Piazza San Carlo 


2007년 11월 토리노 여행은 불운으로 시작됐다. 뉴왁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 홀란드 터널을 들어가기 전 택시 안에서 1시간 이상이 지체됐다.  공항에 이륙 45여분쯤 전 도착했을 때 러기지백을 체크하고, 검색대에서 또 지체됐다. 게이트에 도달하니, 비행기 문이 닫혔다. 2-3시간 후였나,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단 1좌석만이 남았다. 가방만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다음날 저녁 떠나기로 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티켓 변경 벌금을 물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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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이 자리한 카스텔로 광장 Piazza Castello 


다음 날 우리는 공항으로 가기 전 또 여유를 부렸다. 센트럴파크 사우스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산 도메니코(San Domenico, 지금의 마레아 Marea)에서 점심을 먹었다. 트러플 시즌이라 감자처럼 생기고, 냄새가 지독한 트러플(이탈리아어로 타르투포)를 입구에 전시하고 있었다. 씨푸드 파스타를 먹고, 느긋하게 뉴왁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스무스하게 토리노행 비행기를 갈아타기위해 파리까지 갔다. 샤를르드골 공항에서 1시간 여유가 있기에 공항에서 우리의 짐이 제대로 갈 것인지 확인 받은 후 숍에서 포숑(Fauchon) 과자, 푸아그라 캔, 치즈 몇종을 산 후 토리노행 비행기에 올랐다. 토리노 공항에서 짐을 찾으려는데, 우리의 짐이 안보였다. 먼저 보낸 짐이 실종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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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 시대의 팔레티나 문(Porta Palatina/ Palatine Towers)


그래도, 토리노는 이탈리아였다. 공항 사무실에서 치약, 칫솔, 샴푸 등과 티셔츠까지 들어간 예쁜 화장품 지갑을 남녀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여성용엔 T셔츠가 없어서 아쉬웠다. 호텔(빌라 아씨, Villa Assi)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언덕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내가 항의하니, 운전수는 더 큰 소리로, 그러나 이태리어로 반박했다. 아이폰 앱이 있었더라면, 우버가 있었더라면! 예상보다 20유로가 더 나왔다. 호텔 매니저에게 요금을 물어서 알게된 것. 이렇게 짐 잃어버리고, 택시요금 바가지를 쓰면서 토리노 여행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다음날 실종됐던 가방들이 무사히 호텔에 들어왔다.  



PICT0303.jpg 알바의 버섯과 트러플 폴렌타


토리노가 자리한 피드몬테(Piedmonte) 지방은 이탈리아 와인의 명산지다. 바롤로, 바바레스코, 바레라 등 명품 레드와인이 풍부한 이 지역은 서양 요리사들이 숭배하는 버섯의 일종인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의 산지이기도 하다. 1964년 피드몬테의 트러플 산지 알바(Alba)의 작은 빵집에서 헤이즐넛 코코아 스프레드 누텔라(Nutella)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86년 작은 마을 브라(Bra)에선 패스트푸드에 대항하는 슬로우 푸드(Slow Food) 운동이 시작됐다. 라바짜(Lavazza) 커피는 1895년 토리노에서 창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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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명산지 알바의 화이트 트러플


토리노를 '맛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뉴욕은 물론, 한국에도 진출한 이탈리안 수퍼마켓 이태리(Eataly)는 2017년 초 토리노에 처음 오픈한 마켓이다. 벌써 뉴욕엔 플랫아이언(23스트릿)과 로어맨해튼를 비롯 미국 대도시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또한, 인기 젤라토/아이스크림 부티크 '그롬(Grom)'도 토리노에서 시작된 명물이다.  



토리노 하이라이트 What to do in Torino(Turin) in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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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수의: 산조반니 바티스타 성당(Cattedral di San Giovanni Battista)에는 수세기 동안 진위의 초점이 되어온 예수의 수의(The Shroud of Turin)가 보존되어 있다. 예수의 시신을 쌌다고 하는 아마포에는 수척한 모습의 형상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1354년에 처음 발견되어 1578년 사보이 왕가가 새 수도인 토리노로 옮겼다. 진짜든 가짜든 이 수의를 보려고 성당을 방문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http://www.cittaecattedrali.it/en/bces/3-cathedral-of-san-giovanni-batt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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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박과 대리석으로 휘황찬란한 콘솔라타 성당(Santuario Basilica La Consolata)도 구경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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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박물관(Museo Nazionale del Cinema): 매년 늦은 가을 토리노에서는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토리노 영화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의 권위를 따라가지는 못할지언정 세계 정상의 영화박물관을 자랑하고 있다. 1941년 탄생한 이 뮤지엄은 2000년 유대인 회당이었던 첨탑 빌딩 '몰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로 옮겨가면서 단숨에 토리노의 보물이 됐다.


1층에는 누워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각 방마다 공포영화는 화장실에서 멜로 영화는 둥근 침대에 누워서 볼수 있다. 몰 안토넬리아나는 1863년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알레산드로 안토넬리의 이름을 땄다. 토리노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격. http://www.museocinema.it/index.php?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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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박물관(Museo Egizio): 카이로뮤지엄, 대영박물관과 함께 이집트 미술의 3대 보고로 꼽히는 토리노의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 밖 최대의 컬렉션인 3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두개의 대형 갤러리에 고대 이집트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람세스 2세, 투탕카멘 등의 거대한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이집트 갤러리는 약해보인다. 컬렉션 수에서는 메트가 앞서겠지만, 토리노 이집트박물관의 석상 컬렉션은 압도적인듯 하다. http://www.museoegizio.i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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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국의 첫 상원 의회였던 왕궁에 자리한 고대미술관 Civic Museum of Ancient Art (Palazzo Madama)은 중세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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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노 왕립 도서관 Biblioteca Reale 특별전을 보러 갔다가 '장미의 이름으로'에 나올 법한 노년의 사서(?)와 말이 통하지않는 바람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드로잉을 특별히 구경할 수 있었다. http://mostre.bibliotecareale.beniculturali.it/it/mostre/leonardo-e-i-tesori-del-re


# 토리노왕립극장(Teatro Regio Torino): 우리가 여행했을 때는 오페라나 발레 대신 '극장' 구경을 했다. 그런데, 매표소와 소통이 안되어 영어가 아닌 이탈리어 투어라서 말도 못알아 들은 채 극장만 둘러봤다. 2014년 카네기홀에 토리노왕립극장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오페라 '윌리엄 텔' 콘서트를 연 예술감독/지휘자 지안안드레아 노세다(Gianandrea Noseda)가 실력파이니 만큼 그가 지휘하는 오페라도 볼만할 터이다. http://www.teatroregio.torino.i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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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노 RAI 오디토리움(Auditorium RAI di Torino): 일명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오디토리움. 토리노같은 고도에서 의외였던 비교적 모던한 콘서트홀. 원래 1856년 건축된 서커스 극장 'Royal Hippodrome Vittorio Emanuele II'이었다가 1872년부터 전용 콘서트홀이 됐다. 1901년과 1926년 개보수를 거쳤다.  토리노는 이탈리아 최초로 시즌 내 오케스트라를 상주시킨 도시로 알려져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 중엔 젊은 첼리스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활동했다. 2007년 토스카니니의 서거 50주년에 오디토리움이 그에게 헌사되며 이름이 들어갔다. 우리는 여행 중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보았는데,  링컨센터 에버리피셔홀(현 데이빗 게펜홀)보다 음향이 좋았고, 음악 감상에도 아늑했던 홀로 기억된다. http://www.orchestrasinfonica.ra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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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조토와 트러플: 한국에 곱돌비빔밥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닭국물에 버터와 쌀 그리고 새우, 버섯, 채소 등 각종 재료를 넣고 오래 조리한 밥, 리조토(risotto)가 있다. 피드몬테 지방은 특히 쌀요리 리조토로 유명하다. 특히 가을에 포치니 버섯을 넣은 리조토에 알바의 명물인 화이트 트러플을 갈아 토핑으로 얹으면 그 맛은 '천국'이다. 리조토에 바롤로 와인만 넣어 빨갛게 만들기도 하는데 역시 별미다.  


늦가을 세계에서 몰려든 식도락가들이 토리노 인근 산악지대로 트러플 헌팅에 나서기도 한다. 감자 같은 모양에 지독한 치즈 냄새를 풍기지만 한국의 산삼과 송이 버섯처럼 귀하다. 영화박물관 옆 리스토란테 소토 라 몰(Ristorante Sotto La Mole)에서 바롤로 와인으로 조리한 리조토와 파스타 위에 얹은 화이트 트러플이 감미로웠다. https://www.thefork.it/ristorante/sotto-la-mole/50382?cc=18174-5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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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과 비체린: 초콜릿하면 벨기에를 연상하지만 사실상 고체형 초콜릿을 발명한 곳은 토리노라는 것이 정설이다. 18세기말 지안듀오토라는 이름의 초콜릿이 토리노에서 탄생했다. 에스프레소 커피에 핫초콜릿을 섞어 휩드 크림을 얹은 코코아커피 칵테일 비체린(bicerin)은 거리 곳곳의 카페에서 맛 볼 수 있다.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보다 바에 서서 마시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1763년 비체린을 만들어낸 카페 Caffè Cioccolateria Al Bicerin에서 참맛을 느낄 수 있다.  torta gianduia e cioccolato amaro http://www.biceri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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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페라티프(Aperitif): 방사선으로 뻗은 토리노 다운타운을 거닐다보면 레스토랑과 카페마다 '아페라티프' 사인과 마주치게 된다. 이는 '이른 저녁(early dinner)'에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뷔페다. 말하자면, Happy Hour Tapas Buffet. 파스타, 리조토, 살라미와 치즈 샐러드 등 애피타이저 부르스케타(bruschetta)로 북부 이탈리아 요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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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드몬테 와인컨트리: 바롤로 & 바바레스코:  피드몬테 지방에선 와인산지 랑게(Langhe)에서 이탈리아 와인 중 '왕'으로 불리우는 바롤로(Barlo)와 여왕으로 불리우는 '바바레스코(Barbaresco)' 산지를 둘러볼 수 있다. 언덕 위의 네비올로 포도밭 풍광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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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마테호른: 스위스 국경과 가까운 토리노는 '알프스의 수도(The Capital of the Alps)'라는 별명이 있다. 알프스까지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리며, 버스와 기차도 있다. 알프스의 마테호른(Matterhorn, 4478미터)까지는 케이블카로 오르면 된다.실제 알프스 자체보다 가는 길 하늘에 신기루처럼 뜬 섬같은 알프스 봉우리가 더 신비스럽다. 


토리노에서 '요식업계의 다이아몬드'로 불리우는 트러플 산지 알바(Alba)까지는 1시간 내외, 슬로우 와인이 시작된 작은 마을 브라(Bra)도 인근이다. 가을엔 사냥견을 동반한 트러플 헌팅도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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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마테호른으로 가는 케이블카. 알프스도 들를 수 있어서 토리노 여행이 더욱 즐겁다.



delfina.jpg *세계 3대 진미: 트러플(Truffle/Tartufo)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