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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이입니다(I. M. Pei)" 

할리우드 영화 보며 '아메리칸 드림' 키웠던 마스터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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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건축회사 Pei Cobb Freed & Partners의 창립자  I. M. Pei  Photo: Ingbet Grüttner 

"건축가들은 은퇴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은 와인처럼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일한다"고 말한 이가 있었다.

 4월 26일로 100세를 맞은 거장 건축가 I.M. 페이를 두고 한 말인듯 하다. 

 

이름부터 알아봤을까? “내가 페이야(I am Pei)”라고 말하는 것 같은 I. M. 페이(1917-)는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입구로 명성을 쌓은 페이는 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의 동관(East Building)을 설계했다. 뉴욕에선 제이콥 K. 재비츠 컨벤션센터와 57스트릿의 포시즌호텔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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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의 히트작이 된 루브르박물관 입구 유리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낮에 햇빛으로, 밤엔 달빛에 빗난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페이는 1917년 광저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중국 이름은 페이 여밍(貝筆銘). 홍콩과 상하이에서 자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중국 소저시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상하이는 당시 ‘동양의 파리’로 불리웠던 글로벌 도시였다.


세인트존중학교 시절 페이는 당구장에 다니고,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보는 것을 즐겼다. 영어 실력을 키워준 것은 영어로 번역된 성경과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었다고 한다. 열세살 때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자 아버지는 에일린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 뉴욕으로 떠났다. 

 

그가 미국유학을 결심한 것은 순전히 할리우드 영화 때문이었다. 빙 크로스비에 매료된 페이는 1935년, 열일곱살의 나이로 배를 타고 태평양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필라델피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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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의 모던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맨해튼 57스트릿 포시즌 호텔 로비. 예전 애프터 눈 티를 마시다가 모니카 르윈스키를 보았다.


페이는 곧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 등록했으나 바로 MIT로 전학한다. 건축학도로서 페이의 불만은 두 학교가 모두 ‘보자르(Beaux-Arts) 건축’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페이는 독학으로 스위스 출신 혁신적인 건축가 르 코르부시에(Le Corbusier)에 대한 연구를 했다. 르 코르부시에는 훗날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아이 엠 페이는 또한 구겐하임뮤지엄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영향을 받았다. 1938년 페이는 자신의 롤 모델 라이트를 만나기 위해 위스컨신주 스프링그린의 테일스핀의 별장까지 운전해갔다. 그러나, 2시간을 기다려도 라이트는 만날 수 없었다. 라이트는 이곳에서 폭포가 떨어지는 별장 ‘폴링워터’와 구겐하임뮤지엄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설계하게 된다.

 

하버드대학원으로 진학한 페이는 유럽에서 온 건축가들과 사귀었다. 바우하우스스쿨의 창립자이며 독일 건축가 월터 그로피우스와 헝가리 출신 모더니즘의 마스터 마르셀 브라우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페이의 모더니즘 철학은 굳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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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면엔에 중국식 'moon gate'로 자신의 도장을 찍어 놓았다. 

이후 페이는 하버드대에서 조교수로 강단에 섰다가 1948년 뉴욕의 부동산회사 웹&냅의 건축부장으로 스카웃된다. 그리고, 1960년 자신의 건축회사 ‘I. M. 페이&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콘크리트나 유리를 씌운 날카롭고, 기하학적인 구조물은 페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1983년 건축가들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수상한다. 1979년 첫회에 필립 존슨, 이후로  리처드 마이어, 오스카 니마이어, 안도 다다오, 렘 쿨하우스, 장 누벨, 자하 하디드 등이 받은 상이다. 그리고, 2003년엔 뉴욕 쿠퍼휴이트내셔널디자인뮤지엄이 시상하는 평생공로상, 2010년엔 왕립영국건축가협회로부터 로열골드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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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의 이스트 빌딩. 그의 트레이드마크, 유리 피라미드는 조연.


1956년 페이는 그랜드센트럴터미널 철거 계획에 따라 그 자리에 80층짜리 모래시계형 유리 빌딩(Hyperbloid)을 설계한 적이 있었다. 페이의 초첨단 빌딩 대신 북쪽에 팬암(현 메트라이프 빌딩)이 건축된다. 한편,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의 반대 캠페인으로 그랜드센트럴은 랜드마크가 되었다. 만일,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유리 빌딩이 올라갔다면, 페이는 뉴요커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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