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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7.01.03 23:15

(239): 이영주, 할렘서 쏘아 올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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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39) 


할렘서 쏘아 올린 희망


글: 이영주/사진: 안마리아 


IMG_0016.JPG Photo: Maria Ahn


마 전, 할렘아트스쿨(Harlem School of the Arts) 학생 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큰딸이 그 학교에서 현악과장으로 첼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침 전날부터 내린 눈으로 블루네 집 옆 공원엔 눈이 제법 쌓여 있었습니다. 블루는 눈을 보더니 한 웅큼 쥐어 제게 눈싸움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한동안 눈싸움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손자 블루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할렘학교로 가는 길부터가 즐거웠습니다.


할렘학교는 분위기부터가 자유분방했습니다. 교수진 중의 한 사람이 마치 TV쇼 호스트처럼 재미있게 진행하는데, 발표하는 학생들이나 청중들이 그냥 한 통속이었습니다. 함께 흥겨워하고, 함께 느끼면서, 함께 감동을 주고받았습니다. 처음엔 뜨악해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저도 그들처럼 소리 내어 깔깔 대고,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박수를 치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네 살 박이 손자 블루 녀석이 너무 시끄러워 귀가 아프다며 손뼉을 치지 말라고 제 손을 끌어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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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lem School of the Arts  Photo: Maria Ahn



13살짜리 첼로 학생은 독주를 위해 무대에 나와 첼로 앞에 앉더니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청중들이 신기한지 빙~ 둘러보았습니다. 어릴 때 마이클 잭슨처럼 눈이 크고 귀엽게 생긴 얼굴로 흡족해하며 씨-익 하고 웃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그가 연주하면서 음이탈을 해도 그저 대견하고 장하게만 여겨졌습니다. 첼리스트들의 합주는 첼로 소리가 뭉쳐 있으니까 무조건 멋있었습니다. 제일 어린 레이첼이 제법 첼리스트다운 우아한 포즈로 연주를 하는 모습이 미소를 머금게 했습니다. 악기 중에 첼로가 가장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여러 대의 첼로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심금을 울리는 남성합창과 같다고 해야 할까.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해야 할까.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소리가 가슴을 힐링 시켜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청년은 소년은 후레시맨 같았습니다. 소년처럼 어린 티가 흐르지만 몸매는 마치 한국 남자 아이돌처럼 잘 빠지고, 키가 컸습니다. 그 날렵한 남자 냄새나는 몸으로 조금씩 그루브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음색이 제가 좋아하는 칼러였습니다. “한국의 K-POP 오디션에 나가면 무조건 우승이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릴 정도로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9살짜리 꼬마 기타리스트가 발 받침대에 발을 얹고서 ‘로망스’를 연주할 때는 그냥 자지러졌습니다. 음악 자체가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하기 짝이 없는데, 어린 기타리스트의 앙징스런 몸과 얼굴이 아름다운 선율과 어우러져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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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lem School of the Arts  Photo: Maria Ahn


라이맥스는 이 학교의 자랑인 댄스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I'll go to the King'이란 노래를 부른 재학생이었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학부형 대표로 노래를 불렀는데, 은퇴한 유명한 가수인가 착각할 정도로 풍부한 감성과 부드러운 허스키가 여간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가수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노래 잘하는 DNA가 손녀에게 물려졌나 봅니다. 그녀는 할아버지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저음으로 노래를 시작하더니 점점 기승전결을 향해 노래가 파도를 탔습니다. 강을 건너고 바다로 나가 파도에 출렁이는 노래. 그러다가 절정의 순간에 터진 고음은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최고 고음이었습니다. 그 최고 고음을 그녀는 박진영의 말대로 몸의 힘을 쭉 빼고 마음껏 불러 제끼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주님께 가겠다는 그 노래가 가슴에 와서 팍팍 지문을 찍어대었습니다.


노래를 회오리처럼 끝내고 난 뒤에도 감정에 북받친 그녀는 한동안 무대 위에서 몸으로 폭발하는 감정을 분출하며 느낌을 연소시켰습니다. 청중들은 너나할 것 없이 쓰나미를 맞은 것처럼 그녀와 함께 포효하고, 그녀와 함께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야말로 감동과 감동이 모아져서 만들어진 격렬한 감동의 쓰나미가 한참동안 공연장에 눈폭탄처럼 휘몰아쳤습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에게 “마리아, 나 해마다 너희 학교 발표회에 올거야.”,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듯 어깨를 들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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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lem School of the Arts  Photo: Maria Ahn


렘스쿨은 51년 전인 1964년, 할렘의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설립자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도로시 메이너(Dorothy Maynor, 1910~1996) 입니다. 그녀가 학교를 처음 세웠을 때 학생이 20명이었는데, 1990년엔 1,500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물론 더 많이 발전했습니다. 설립자 도로시는 흑인 최초로 트루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가를 부른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들여다보면 성공이든, 세상의 변화든, 예술도, 문화도, 귀퉁이에 숨어있던 보석들이 개척하고 발전시킵니다. 할렘 학교에서 저는 그동안 죽어있던 신앙의 불꽃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젠 가슴 뛸 일 없는 나이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던 가슴이 쿵쾅쿵쾅 다시 뛰게 되었습니다. 새삼 저의 딸이 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선한 희열과 즐거움, 미래에 대한 도전과 탐험의 씨앗을 다시 심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2016년이여, 고통은, 혼란은, 슬픔은, 외로움은, 두려움은, 네가 다 짊어지고 가라.

2017년은 희망, 희망, 희망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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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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