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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16.07.26 09:40

(202) 이수임: 빨간 차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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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선인장 (41) Red Car Memories


빨간차여 안녕!



“화가가 빨간색 차가 뭐야. 이제 그럴듯한 차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 차를 보고 몇몇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차가 듣겠다. 이차가 어때서 좋기만 한데. 뭘 모르고들 있네.”



Red car story.jpg Soo Im Lee, the red car, 2010, gouache on paper, 12 x 9 inches



를 탈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차 문을 두들기며 ‘착한 놈, 볼일 보고 무탈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게 잘할 거지?’ 하고 중얼거렸다. 차는 귀가 달렸는지 아무 말썽 없이 오랫동안 잘 달렸다.


보기에는 별 볼 일 없지만 일단 말을 잘 들었다. 매달 부담하는 페이먼트도 없다. 기름도 적게 들고, 길가에 세워놔도 예쁘지 않아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착한 우리 효녀를 버리라니.


친정 아버지에게도 효자가 있었다. 서울 남산 밑에 작은 건물이 있는데 아침마다 남산 갔다 내려오면, 건물 앞에 서서 ‘자식들 다 소용없다. 네가 효자다.’라며 은근한 눈길로 건물을 올려다보셨다.


아주 오래전, 옷 가게에서 일했다. 그 당시 가게에 코트만을 전문으로 대 주던 나이 든 유대인이 있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에 비하면 우리 차는 양반이다.


그는 엄청나게 부자인데도 항상 고물차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나보고 잠깐 밖으로 나오라며 손짓을 했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라며 소매를 걷었다. 그리고, 유대인 수용소에서 받은 파란 숫자가 새겨진 팔뚝을 보여주며 고물차 트렁크 안의 007 가방을 열었다. 호신용이라며 허가받은 듬직한 권총을 보여주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고물차가 대견한 효자라도 되는 듯 탕탕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의 미소의 의미도 아마 ‘네가 효자다.’가 아니었을까?



“마누라 저 차 어때? 선글라스 끼고, 머플러 휘날리며 달려보고 싶지 않아?” 남편은 앞서 가는 뚜껑 없는 비싼 스포츠카를 보며 한마디 했다. “차가 듣겠다. 바꾸기는, 말 잘 듣는 우리 효녀를 두고.”


차가 멈추지 않는 한 절대 새 차를 사지 않겠다며 다짐하곤 했던 내가 13년 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 애쓴 멀쩡히 잘 굴러가는 차를 딜러에게 넘겨주고 새것으로 뽑았다. 영문도 모르고 주차장에 갑자기 버려진 빨간 차는 자기를 타고 가지 않고 번쩍이는 멋진 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우리를 얼마나 야속해했을까! 점점 작아지는 빨간 색을 백미러로 보며 마음이 쓰렸다.


어디에 있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인간인지라 ‘세금 혜택을 보려면 새 차를 사야 한다’고 하지를 않나, ‘나이 들어 튼튼하고 좋은 차를 타야 한다’는 둥 여러 이유에 귀가 솔깃해 너를 버렸구나. 새 주인 말 잘 듣고 사랑받으며 잘 있는 거지?


차안에 가수 유익종 노래 ‘이연(異緣)’이 담긴 카세트를 두고 왔다. 딜러에서 보내준 카세트를 틀었다. 차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야. 우리 사랑을 간직하고 살면서…’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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