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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6.05.12 01:30

(186) 김희자: 데스 밸리를 지나며...

조회 수 1519 댓글 1

바람의 메시지 (8) 아날로그 화가의 서부 여행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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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quite Flat Sand Dunes  Photo: Wheiza Kim

 

 

3년 전 LA 전시에 초대받으면서부터 전시기간 동안에 꼭 하고싶은 여행이 하나 있었다. 수년 전 갔던 곳이지만, 마치  마음에 밟히면서도 까닭이 잡히지않아 완성되지 못한 채 늘 벽에 걸린 작품처럼, 미련의 먼지를 털지 못하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여행을 꼭 다시 한번 더 가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수억년 동안 내려쬐인 햇살과 고요로 정제된 모래 속에 내 정신을 묻어 모래 찜질로 정화시키고 싶었다. 아마도 그간 축적된 내 영혼의 먼지와 독기가 빠지고, 새롭고 순수한 혼으로 탈바꿈을 해서 정말 좋은 관조의 작품을 구상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며.

 

나는 전시회 오프닝을 하고 나서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에 신경 쓰는게 참으로 싫다. 열심히 작업해서 작품의 메세지를 위한  제목과  어떠한 연유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Artist Statement를 정직하게 써주었으면, 나머지는 화랑에서 할 일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트 히스토리에 나올 만큼 유명한 작가들이나 갖는 태도"라고 작가인 친구들이 비아냥댔다. 세상 패라다임이 바뀌어서 이젠 작가도 마치 1인 기업을 운영하듯이 작품 제작은 물론 고객 관리, 화랑을 사이드로 도와주기, 평론가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여 매스컴에도 연결시키며, 운영의 묘를 행해야 현대 작가로 성공을 한다는거다. 화가가 *루나 컴플렉스로 사는 것이 마치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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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Tranquility/적막, 56"X18"x4", Acrylic on natural wood, 2005

 

               

수년 전만 해도 전업작가 선배들의 충고가 "작가는 모름지기 일인교의 교주가 되어야 한다"였다. 자신이 창조하는 것에 대한 철저한 개념을 갖고, 그 신념을 향해 종교라할 만큼의 신심을 가지고, 누가 뭐래도, 끝까지 추구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작가이다. 평론이니, 판매니에 시간 보내지 말고, 오로지 몰입과 정진하는 태도로 매일 성전에 가듯 작업실을 향해야 한다고...  

 

나는 그 충고를 따르며 살아온 작가의 대열에 끼이는 것 같다. 어찌 천성에 없는 짓을 충고한다고 할 수 있겠는지. 사실 디지탈 시대라는 지금 세상은 모든 면에서 도무지 따라 잡을 수가 없게 무서운 속도로 변해간다. 어쨋거나,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두뇌 상태로 굳은 세대이니, 내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내 삶의 스피드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리도 없으니, 내 마음의 나침반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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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리는 도로

 

지난 데스밸리 방문은 벌써 십년보다도 훌쩍 더된 얘기가 되버렸다. '죄악의 도(Sin City)'라 불리는 라스베가스의 황홀경에서 빠져나와 돌아가는 길에   인간이 만든 최첨단의 쾌락 지옥을 구경했으니, 신이 만든 '죽음의 계곡'이란 곳이 근처에 있다. 그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이러닉하지 않은가. 그곳을 가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나의 어거지 설득에 넘어간 남편은 무경험자의 용감함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새벽에 떠나야 했어야 하는 먼 길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늦은 아침을 먹고서 근처 주유소에서 마치 양피지 위에 그린 보물지도 마냥 엉성한 데스밸리 지도 한장을 얻어서 무조건 출발을 했다.

 
 

리는 적막 지옥에라도 빠진듯이 반나절 이상 운전했는데도 지나가는 자동차 두어 대를 만났을까 싶다. 죽음이 깃든 것같은 불안함이 농축되어가는 느낌이 마치 깊은 바닷 속으로 들어간듯 했다. 귀조차도 멍멍해지고, 그곳을 벗어나기위해 허우적대기 시작했었다. 어디에도 머물며 그 특별하고 고유한 경치들을 감상할 여유를 몇분도 가질 생각을 할 수가 없는 패닉에 가까운 심리 상태가 됐다. 어스름한 땅거미의 추척을 피해 통과를 위한 통과를 해야 했었다. 그렇게 허급지겁 쫓긴 여행이었던지라 그 속에 무언가 보물이 있었을텐데하는 미련을 더욱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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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Palette Viewpoint.  Photo: Wheiza Kim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질 코치 투어 버스로 작은 그룹이 만들어졌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그룹 여행은 유익한 정보도 듣지만, 항상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내가 항상 상상했던 죽음과 침묵을 묵상하도록 신이 지켜주고 있는 곳이 아니고... 그의 말에 의하면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이 불리워진 것은 서부에 금광의 전성시대인 1840년대 금을 쫓아서 고향을 떠난 자들의 기나긴 행렬이 이곳을 지나며 무서운 더위와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의 햇살 아래 물과 식량이 떨어지고, 인디안들의 추격으로 생명을 위협받으며 얼마되지 않은 생존자가 겨우 통과하여서, 그들이 여기를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게 되면서 부터라 한다. 그러한 욕망의 역사를 알지 못한 체 그냥 이 사막을 만났을 때의 적막과 청정의 기억이 소란함으로 돌모래 바람 속으로 말려든 것 같다.

 

나에게 이 아름다운 사막은 어린왕자가 다른 별로부터 도착한 곳이었고, 인디언 컨추리에 살던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속, 짐승의 하얀 해골뼈 위에 영원한 고요를 축복하는듯 꽃을 얹어놓은 죽음의 찬미가 그려진 곳이며,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 속의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던 고독한 지구 위 어느 곳이다. 

 

야망의 깃발을 올리고 금광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절망과 고난으로 헉헉대는 모습을 상상하고, 흥미를 돋우는 것 같다. 탐욕으로 인한 고통의 인간사는 언제나 언짢을 뿐, 내겐 아무런 감동을 일으키질 못한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의 욕망을 위해 황금을 찾아 선택한 그들의 죽음과 삶이었을 뿐, 성공을 했건 못했건 금전 지상주의의 노예로서의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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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riskie Point  Photo: Wheiza Kim

 

 

계속해서 금광지역의 흥망성쇠와 노다지를 꿈꾸는 가이드의 농담으로 시종일관하는 여행길에 오른 내 불찰에 후회가 막급했다. 그러나, 오늘 들렀던 아티스트 뷰(Artist's Palette Viewpoint) 스팟이나 악마의 골프장,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니 하는 그곳들은 사람들이 명명한 이름 때문에 방해가 되긴 했지만, 너무도 상상을 초월하는 신이 창조한 장관들이었고, 가이드 없이는 가기가 어려웠을 곳이었다,  지난 여행에서 푯말만 보고 지나갈 수밖엔 없었기에 더욱 미련을 끊지 못한 나로선, 매우 감사해야 할 부분이긴 했다.

 

러나, 지금의 데스밸리는 더 이상 신성함을 느낄 정도의 죽음같은 정적이 깃들었던 그 곳이 아닌, 어디로 눈을 돌려도 관광객으로 우글대는 여타 관광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태고적 깊은 바다 밑이었던 이 계곡의 신비를 온 감각으로 느끼고 싶었기에 그리도 그리워했었다. 본래 사막은 엄숙한 대자연의 법으로 인간들의 접근을 금하여 그 신성성을 지켜왔을 것이다. 지난번 이 계곡을 지나며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이 하나둘 기포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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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Zen Garden/젠가든,  35"x13"X3", Acrylic on natural wood, 2003

 

 

다리가 부러져 날지 못하고 절뚝거리던 검은 까마귀 한마리 외엔, 그 무엇도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절대 정적 속, 모래바람과 메스키쉬 부쉬가 고요를 흔들어 보려는듯 가끔 굴러다니는 절대 침묵으로 고여 있었다. 우리는 컨버터블 오픈카로 한낮의 찌는 더위를 달리며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더위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는 대상들의 고통을 느껴보기에 충분했고, 가끔 어른대며 호수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보며, 목마름으로 죽어갔을 사막을 지나는 이들의 비통한 신음소리가 들리는듯 했었다. 

 

해질 무렵 기름은 바닥이 나가고, 읽어 보아도 해독이 불가한 지도에 의지하며 얼마나 더 가야 이 계곡에서 벗어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헤드라이트에 비추이는 아스팔트 포장 길만을 따라 운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주유소나 식당 같은 걸 찾다가 혹시나 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고스트 타운에 들어가게 되어 얼마나 소름이 끼쳤던지 정말 머리카락이 선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길을 잃고, 굶주리며 어둠으로부터 도주하던 그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감독이며 배우인 우디 알렌의 명언 "시간은 어떠한 지극한 공포나 비극도 희극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며... 두번째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번째엔 꼭 완성시킬 것같은 여행을 꿈을 꾸며, 언젠가 사막에서 잠을 자며 할 수 있을 캠핑 여행 계획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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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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