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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6.01.27 01:49

(155) 김희자: 바람이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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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1) Message from Wind


고립된 화가의 모놀로그



드디어 나는 기꺼이 고립생활을 택했고, 그 상황을 즐기며 작업하면서 살고 있다. 시골서 살아본 일이 없는 도시 여자의 전원 생활은 '시간이 지나면, 지극한 비극도 희극이 된다'고 하던 명언대로, 많은 우스운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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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밤 산책/Night Walk, 24”×24”×4”, Acrylic on wood, mirrors, 2008


                                                      

는 바람이 표류하는 긴 섬, 동쪽 끝머리 바닷가 숲의 언덕에서 살고 있다. 파도 위에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며, 뺨으로 스치며, 귓가로 맴도는 부드럽고도 거센 바람소리를 들으면, 이 소리가 바로 자전하는 지구의 몸짓 소리일테지하며, 가끔은 생텍쥐베리가 어린 왕자를 그리며 작은별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연상하며, 그가 한 얘기들이 기억되어, 미소를 짓게 된다. 많은 친구들이 내게 '제발 그 먼데 고립되고, 시티로 나들기 힘든 곳에서 살지말고, 시티의 한인들이 사는 가까이로 나오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고립을 선택했다는 얘길 결코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친구들에 대한 배타적인 사유로 들리게 될 것이기에. 사실 시티에서 2시간 이상을 운전해야만 오는 곳에 대한 격리된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이기적이라 해야 할테지지만,  마음의 거리만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친구를 하니 그리 불편할 것이 없다. 내가 그러해서 여기서 산다라는 말을 어찌하겠는가. 누구나 다른 모양과 색깔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걸 알고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자의식이라는 것이 생기면서부터 수없는 독서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해 40이 넘도록 의구심과 혼란을 면치 못하며 살았었다. 서울에서 미친듯이 바쁘게 살던 삶을 청산하고, 여기에 와서 살면서부터 아이러니칼하게도, 서양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을 통해서, 동양 철학과 고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서야 나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혼란의 실마리를 찾아 내어, 내 인생을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오랫 동안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겐 동양 철학이나 사상을 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걸까'라는 불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 근대 역사의 상황이 그러했음을 알게 되면서 불평보다는, 그나마 많은 삶에 대한 경험 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증으로 만났기에 더욱 깊고  폭넓게 이해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도 내 삶에 있어서의 시절 인연이 그러한 가보다라고, 그 또한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장자의 무위자연과 불가의 선수행으로 내면이 항상 깨어있어 맑고 충만한 의식으로 작품생활을 하며 살기를 오랜동안 꿈꾸었었다. 또한,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R.W. Emerson과 H.D.Thoreau, 독일 작가 H. Hesse의 삶에 대한 사유를 자의식이 생긴 이후 늘 가슴에 품고 깊이 동경해 왔었다. 그들처럼, 대 자유정신을 이식받아 창조적 영혼을 배양하며 살고 싶다는 소원이 마침내, 새와 동물들의 서식지로 보호되는 여기 숲을 발견하게 됐다. 드디어 나는 기꺼이 고립생활을 택했고, 그 상황을 즐기며 작업하면서 살고 있다. 시골서 살아본 일이 없는 도시 여자의 전원 생활은 '시간이 지나면 지극한 비극도 희극이 된다'고 하던 명언대로 많은 우스운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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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장자의 꿈/Sun Tzu’s Dream, 28”×28”×4”, Acrylic on wood, mirrors, 2001



변으로 내려가는 숲 속에 고요히 앉으면, 온 세상을 돌고 돌아온 바람이 안개와 구름을 두르고 지친 몸을 뉘인채 머나먼 미지의 우주 얘기와 세속사에 대한  얘기들을 마치 엄숙한 법문이나 설교를 하듯 들려준다. 살아 존재하고 있는 유정물들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언제나 쉽게 변하고 무상한지...  바람은 파도 소리를 머금고 낮은 바람 소리로  한탄하듯 속삭이다가도,  마치 노도와 같은 목소리로 으르렁대기도 하며 얘기를 한다. 어디에도 가보지 못한 채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항상 명상에 잠겨있는 숲 속 나무들은 그 모든 바람의 얘기들을 마치 영원히 전해야 할 어록(analects)처럼 낱낱이 온 생명 속으로 새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어딘가 머나먼 숲에서 왔을 아름들이 나무들이 인간들의 필요에 따라 재목으로 잘리고  얇게 켜져 열려져서 그들의 일생의 기록이 다 드러난채 내 눈과 마음에 파고들었다. 시간의 패세지를 따라 마치 시와 음율로 정교한 악보처럼 새겨진 그레인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을 느꼈었다. 나는 그 흐르는 선에서 바람 부는 바다와 파도, 고요한 강, 돌돌대며 흐르는 여울과 구르는 돌들, 나무와 풀과 꽃들 반짝이는 햇살, 달,  별과 펼쳐진 은하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수억의 인간들의 지문이 다 다르듯, 나무의 결도 하나마다 고유하다는 것과 그 결 속에 비밀코드 같이 색인된(ingraved) 바람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불경이나 바이블을 접하듯이 경건한 마음이 일었다. 그 모든 바람이 전해준 얘기들을 시각화하여 드러내어 보여주고 싶었다. 평면에서 탈피한 작업을 하고자 나무라는 재료로 작품을 만든 지는 이미 십수년을 지났었지만,  나무의 결이 내 마음에 들어와 특별한 의미로 닿아온 것은 바람의 정령이 나무들에게처럼 내 무의식 속에도 깃들어있음을 느꼈다. 나는 얼마동안 유식학(동양인식론)에 대한 공부를 하였던지라 인간이 무의식 속에 내재된 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의식이 깨어있지 못해 무심하게 흘려버리며 미망 속에 사는가를 성찰하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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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여정/Journey, 96”×26”×4”, Acrylic on wood, mirrors, 2007



는 결이 있는 나무 판넬로 기하형식의 캔바스를 만들고, 마음의 은유물인 거울*을 사용하여, 거울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반사 작용을 이용해서 구체형의 입체공간이 형성 되도록 제작, 삼각 혹은 마름모의 형태 속에 각각 다른 앵글로 삽입시킴으로써 또 다른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보여준다. 우리들의 삶이 본래 운명으로 지어진 것이 아닌, 인간관계 속에서 선택하며 만들어지는 상황을 은유하여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어떤 작품 형식들은  아무 이미지가 없이 자연의 고유결 자체를 따른 표면과 어떤 이미지가 그려진 이면에, 공간을 두고 덧대어진 거울 위에 이미지를  반사시킴으로 세 부분의 작품공간이 연결되어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끝이고 시작일 것이 없이 작품 속을 들여다보는  관람자의 얼굴이 합쳐지며, 질문과 대답의 진행상태로  작품이 완성되도록 의도했다.


또한, 내 작품 중 일상적으로 많은 숫자의 파노라믹한 풍경화들은, 내 마음과 자연과의 대화의 장이다. 보는 이의 위치와 빛에 따라 달라 보임으로 해서, 지리한 평면성을 탈피하고, 한 작품이 다양한 시점으로  감상되어질 수 있도록 동양화의 고유양식인 평풍이나 현판 형식에  입체적 효과를 만들어서 연출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희노애락이 주어진 관계성에 의해서 혹은 그것을 해석하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허상일 뿐이라는 공하고, 무상한 진리를 거울 속의 허상을 빌어 내 나름의 얘기로 그려  보였다.


*거울과 마음의 비유 

거울은 본래 앞에 어떤 사물이 놓여져서 비치지 않는 한 아무 상도 맺히지 않는 것 처럼, 인간의 마음도, 본래 거울과 같아서, no place, no time 조건의 절대 빈 상태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오욕 칠정의 마음작용이 있어, 온갖 시비와 호오의 집착을 따라 희노애락의 망상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는 비유로 본래 인간의 마음은 거울처럼 맑고, 고요한 것임을 거울의 작용을 빌어 얘기했다.



00000kim100.png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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