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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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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STELLA: A RETROSPECTIVE


프랭크 스텔라: 미니멀리스트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로


OCT 30, 2015–FEB 7, 2016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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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뮤지엄이 10월 30일부터 내년 2월 7일까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 ) 회고전을 연다.


화가였던 어머니를 따라 열두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명문 사립교 필립스 아카데미(안도버)를 다닌 수재였다. 그리고, 프린스턴대로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했던 학구파 아티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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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프랭크 스텔라가 뉴욕에 왔을 때 미술계는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셴버그, 엘스워스 켈리의 추상회화가 득세했다.


이 와중에 스텔라는 미니멀리즘을 시도하면서 검은색 줄무늬 회화롤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스물 여섯살에 파워 딜러 레오 카스텔리가 픽업 개인전을 열어주고, 서른네살 엔 MoMA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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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스텔라는 이후 관습에 도전하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는다. 

사각형의 캔버스라는 전통을 거부하고 조각을 내어서 콜라쥬처럼 붙였다. 이로써 사각형은 변형의 다각형 캔버스가 되고, 평면은 입체가 된다. 2차원적인 캔버스를 해체하면서 3차원의 조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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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MoMA회고전 이후엔 캔버스와 물감에서 탈피해서 펠트, 합판, 섬유판, 골판지, 철망 등 다양한 소재로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난 화려한 색채로 공간적인 회화를 시도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부조 스타일의 회화에서 진일보해 조각에 전념한다. 이와 함께 공공 설치작을 위임받아 제작했다. dldj 90년대엔 스틸, 알루미늄, 화이버 글래스를 이용한 무채색 조각을 다수 제작했다.



IMG_3130 (2).jpg 아담 D. 와인버그 휘트니뮤지엄 관장 겸 큐레이터



휘트니뮤지엄의 프랭크 스텔라 회고전엔 회화, 조각, 부조, 축소 모형, 드로잉 등 12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프랭크 스텔라는 12월 1일 오후 7시 이 회고전을 기획한 아담 D. 와인버그 큐레이터 겸 휘트니 관장과 대화의 시간을 연다. 티켓 $15, $10(멤버).  http://whitney.org



FRANK STELLA: A RETRO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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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frank-stella.jpg!Portrait.jpg FRANK STELLA

1936년 매사추세츠주 말덴에서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으며, 어머니는 풍경화가였다. 

사립학교 필립스 아카데미(안도버)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와 회화를 전공했다. 휘트니뮤지엄 관장이자 큐레이터 아담 D. 와인버그가 한때 필립스 아카데미 갤러리의 디렉터였던 인연이 있다.


1958년 뉴욕으로 이주, 'Black Painting' 시리즈로 즉각 유명해진다. 이어 1962년 파워 딜러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1970년 MoMA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그리고, 1987년 MoMA에서 두번째 회고전을 열었다. 


1983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그의 도발적인 강의 시리즈 'Working Space'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2009년 국가예술훈장, 2011년엔 국제조각센터의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 살면서 업스테이트 뉴욕 뉴버그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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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입장료는(성인 $22, 학생-노인 $18)이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입장료 '맘대로 내세요(pay-what-you-wish)'를 실시한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한다. http://whitne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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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Gertrude Vanderbilt Whitney


휘트니뮤지엄을 창립한 이는 밴더빌트 가문의 여성 조각가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1875-1942)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철로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증손녀다. 뉴욕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뉴포트의 궁전 같은 별장 브레이커스에서 휴가를 보내곤 한 거트루드는 스물한살에 갑부 은행가 해리 페인 휘트니와 결혼했다. 


거트루드는 젊어서 파리로 여행 다니며,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의 화가들과 교제하면서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뉴욕의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하고, 로댕 휘하에서도 지도를 받았다. 뉴욕과 파리에 작업실을 두고 양쪽에서 호평을 받은 거트루드는 스스로 화가들의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특히 여성 화가들을 지원하는데 관심을 보였다. 


  

c775930fb596ee15d71faa5cb01a57a9.jpg 옛 휘트니 매디슨 애브뉴 건물


1914년 자신과 남편이 소유한 부동산 중 그리니치빌리지의 타운하우스에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을 설립하고, 미국의 전위적인 무명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거트루드는 25년간 모든 근대미술작품 700여점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기부하려했으나 거절당한다. 왜 그랬을까? 이로써 1931년 클럽을 휘트니뮤지엄으로 발전한다. 

 

1934년 거트루드는 시누이인 글로리아 모간-밴더빌트와 10살짜리 조카 글로리아 밴더빌트를 두고 양육권 분쟁을 벌였다. 이 소녀는 바로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다. 거트루드는 1942년 67세로 사망해 브롱스의 우드론 공동묘지의 남편 곁에 묻혔다. 


81358a158da26bc0f25975b85ca66ccc.jpg 비엔날레


거트루드는 1917년 ‘보그’지에 등장했으며, 뮤지엄에 로버트 헨리가 그린 초상화(1916)가 있다. 또한, 크리스토퍼 컬럼버스 기념비를 비롯, 여성 타이타닉 추모비, 제 1차세계대전 추모비 등을 공공 장소에 조각을 남겼다. http://whitney.org



delfini2-small.jpg *미국 작가 발굴하는 휘트니뮤지엄 가이드

*2014 휘트니 비엔날레 스케치  

*2012 휘트니 비엔날레 스케치

*난 정신나간 천재: 야요이 쿠사마 휘트니 회고전

*그리던 시대는 끝났다: 웨이드 가이톤 

*소외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드로잉전 

*로버트 인디애나: LOVE를 넘어서

*발튀스와 로버트 인디애나: 유년기에 고착된 거장들의 정신세계

*화창한 날엔 하이라인으로...공중철도 공원 하이라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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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트니 2017.09.21 14:20
    마지막 사진 두장은 더이상 휘트니가 아닙니다.
  • sukie 2017.09.21 15:14
    휘트니뮤지엄 창립자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를 소개하면서 쓴 매디슨애브뉴 구 휘트니의 자료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