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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황/택시 블루스
2015.09.24 12:21

(117) 필 황: 택시 기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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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블루스 <10> 일어탁수(一魚濁水) 


JFK 공항에서 돌고 돌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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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작품으로 옐로캡에 대한 영상물을 만든다는 대학원생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시민 여론 조사에서 옐로캡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로 인해 우버 택시를 환영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페이스북 친구도 옐로캡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표현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대체로 옐로캡은 지저분하고, 불친절하고, 난폭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정직하지도 않다면 말 다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잘 공감이 가지 않았다. 손님에게 불평보다는 감사의 인사를 듣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로서는 다른 옐로캡 기사들이 실제 운행에서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 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다 시민들의 그런 불만을 이해할 법한 일이 며칠 전에 있었다. 


JFK 공항에서 한 무리의 외국인 손님을 태우게 됐는데 일행이 많아 택시 두 대로 나눠가게 된 것이다. 앞 차에 세 명이 타고 내 차에는 두 명이 탔다. 앞 차를 따라 가면 되지만 혹시나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 목적지 주소를 받아 두었다. Maurice Ave.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앞 차 운전수는 캐리비안 출신으로 보이는 흑인이었는데 대머리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대략 40대 초반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자신이 길을 잘 안다며 어떻게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내 차로 돌아와 GPS에 주소를 입력해보니 이상했다. 주유소에서 유턴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도무지 그럴 일이 없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Van Wyck Expressway를 타고 가다가 Long Island Expressway(L.I.E)로 갈아탄 후 Maurice Ave. 출구로 빠지면 바로였다. 의아한 마음을 품고 앞차를 따라 가는데 그는 Grand Central Parkway로 들어간 후 Brooklyn Queens Expressway를 타는 것이다. 그런 후 결국 L.I.E 출구로 나와 Greenpoint Ave에서 유턴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주유소가 있기는 했다. 엄청 돌아온 것이다.


운전하면서 계속 불편했다. 나는 중간에 빠질 길이 여러 번 있었지만 승객들이 불안해할까 봐 앞차를 계속 따라갔다. 결국 최종 요금이 51달러가량 나왔다. 곧장 왔다면 35달러 남짓되는 거리였다. 굳이 이 사실을 밝혀 손님들을 불쾌하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택시 요금을 받고 내려서 앞 차 운전자에게 왜 이 길로 왔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옆에 승객들이 있어 참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JFK 공항으로 돌아갈거냐?”

“그렇다. 당연하지 않냐. 우리는 쇼리 티켓이 있다.”

 

쇼리란 Short-Haul Ticket을 부르는 말이다. 공항에서 퀸즈나 브루클린같이 가까운 곳으로 가는 손님을 태울 경우 받게 된다. 이 티켓이 있으면 공항 내 택시 대기장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빠른 순서로 각 터미널의 택시 승차장으로 배차 받을 수 있다.

 

"나는 가까운 라과디아로 갈건데."

“라과디아로 가봐야 얼마 받지 못한다. JFK에서 태우면 52달러인데 왜 거길 가냐?”


 

는 그가 일부러 돌아왔는지 정말로 길을 잘 몰라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씨익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그것을 읽어내기 힘들었다. 그가 일부러 먼 길로 온 것이라는 심증이 들었다. 마치 그는 ‘내 덕분에 너도 더 벌지 않았느냐’ 하는 듯 했다.

 

나중에 이 손님들은 JFK 공항으로 돌아갈 때 요금이 얼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뉴욕 옐로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나 역시도 도덕군자가 아니며 그다지 양심적이지도 않다. 손님이 아무래도 잘못 준 듯한 거스름돈을 모른 척 챙긴 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속이는 행위는 싫어한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벌만큼 번다.

 

나는 그와 헤어져 가까운 라과디아 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JFK까지 30분 이상을 다시 돌아갈 것이다. 배차를 받아 터미널에서 손님을 태우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JFK가 한가한 시간이다. 그에 반해 그가 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라과디아에서 손님을 태워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

 

그 택시 운전수의 표정은 선해 보였다. 나는 그가 악인이라 사람을 속였다기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회가 있으면 승객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단지 도덕성이 결여됐을 뿐. 다행히도 이런 부류는 소수라서 그나마 이 사회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미꾸라지 한 마리만 있어도 흙탕물이 되듯이 옐로캡에 대한 이미지는 나빠져만 간다.



002황길재100.jpg 필 황/택시 드라이버, 전 뉴욕라디오코리아 기자

1960년대 막바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고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486세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립영화, 광고, 기업홍보 영상, TV 다큐멘터리, 충무로 극영화 등 영상관련 일을 주로 했다. 서른살 즈음 약 1년간의 인도여행을 계기로 정신세계에 눈뜨게 된 이후 정신세계원에서 일하며 동서고금의 정신세계 관련 지식을 섭렵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차 미국에 왔다가 벤처기업에 취업,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 뉴욕라디오코리아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3년 여름부터 옐로캡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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