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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5.01.25 10:40

(75) 이영주: 손자 블루와 함께 한 갤러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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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17)


블루와 함께 한 갤러리 산책


글 /사진: 이영주


17blue7-399.jpg Photo: Young-Joo Rhee



리언 슈나벨(Julian Schnabel)이 만든 영화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첫 장면은 아들 바스키아를 데리고 미술관에 간 그의 어머니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바스키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일찍부터 예술적 교양을 심어주고 교육을 시작해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스키아는 1980년대 신 표현주의와 원초주의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천재화가입니다. 그러나 코카인 남용으로 1988년, 예술적 친구였던 앤디 워홀의 빌딩에서 27세에 요절한 아까운 예술가입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와 그림을 통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사회에 뿌리박힌 권력 구조와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한 그의 정의감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화자가 ‘화가의 임무 중 하나는 나로 하여금 작품을 보게 만드는 것’이라며, “내가 곧 대중이고, 대중의 눈이요, 목격자요, 비평가죠.”라고 하는 말이 어쩌면 바스키아의 예술세계를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17blue3.jpg Photo: Young-Joo Rhee



2015년 새해 첫 번째 나들이는 손자 블루와 함께 였습니다. 마침 첼시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들이 몇 개 된다는 컬빗의 안내가 마음을 움직여 주었습니다. 블루네 집은 첼시에서 몇 블록 남쪽이니 슬슬 걸어가도 되는 거리입니다. 이제 2년 3개월 된 블루가 예술이 뭔지 알리야 없겠지만, 연초에 다시 본 영화 ‘바스키아’가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유모차에 블루를 앉히고 걸어가는데 날씨가 몹시 찬데다 바람까지 날카로워서 걷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갤러리가 뭔지 모르는 블루는 갤러리에서 그림 보고 첼시 마켓에 갈 것이라고 하니 “첼시 마켓? 첼시 마켓?”하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첼시 마켓은 할머니인 저나 엄마, 아기 보는 내니까지 자주 데리고 다녀서 압니다.


화랑 나들이는 저의 세 딸들이 기저귀 차던 유아기부터 시작된 저희 집의 문화 코드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저는 유난히 원시적인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마치 감옥같은 시집살이를 했는데, 그래도 아기가 생긴 후에는 아기를 데리고 하는 외출은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애인 쌍둥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기저귀를 차고 오리궁뎅이로 뒤뚱거리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그림 전시회며 도자기 전시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조금 커서는 음악회나 연극 공연까지 데리고 다녔습니다. 신기하게도 세 아기들은 전시회장이나 공연장에서 잘 적응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커서 연주자가 된 후에 기자들과 인터뷰 하는 중에 기자가 “어떻게 음악적 소양을 키웠느냐?”고 물으니 둘째가 “저희 어머니께서요, 저희들이 어릴 때부터 미술전시회나 연주회 등에 꼭 데리고 다니셨거든요. 그런 모든 것들이 저희들의 상상력이나 정서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하고 대답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요즘도 시간이 허락되면 함께 뮤지엄이나 화랑에 같이 갑니다. 그러면 “엄마 덕분에 좋은 전시회 봤다.”며 고맙다고 합니다.  



17blue1-399.jpg



음 들어간 화랑은 마틴 퓨리어(Martin Puryear)의 신작전을 열고 있는 매튜 마크스 화랑(Matthew Marks Gallery) 이었습니다. 마틴 퓨리어는 컨셉츄얼리즘(Conceptualism)에 기반을 둔 작품을 한다고 하는데, 문외한인 제 눈엔 다만 나무라는 딱딱한 재료를 가지고 구부리고, 꺾고, 원을 만들고, 나무의 온갖 성질을 끄집어낸 점이 경이로웠습니다. 어떤 재료로도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예술가는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블루는 신기하게 작품들을 쳐다보더니 빨간색의 거대한 ‘Big Phrygian’이란 작품을 보자 “우와!” 하며 감탄사를 내뿜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적삼목(레드시다)으로 만들어 붉은 색을 칠한 작품은 그 크기와 붉은 색이 주는 강렬함으로 단연 시선을 끌었습니다.  



17blue2.jpg Photo: Young-Joo Rhee



카라 워커(Kara Walker)의 대형 흰색 스핑크스 실루엣을 보고도 블루는 또 “우와!” 감탄을 했습니다. 어린 눈에는 주로 큰 작품이 잘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녀의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비디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봤습니다. 흑인 실루엣 작품으로 유명한 워커는 ‘흑백 인종문제와 권력의 문제, 소외, 차별, 학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수치감, 환상 속에 어우러진 역사적 사실과 허구 등을 평평한 평면 속에서 마술적인 입체감이 느껴지게’ 재창조하는 작가입니다. 전에도 그녀의 전시를 본 적 있는데, 흑인들이 노예로 억압 받던 시대의 실루엣들이 참으로 구체적이어서 작가가 느꼈을 고통이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17blue8.jpg Photo: Young-Joo Rhee



루가 제일 좋아한 작가는 ‘아시아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일본의 현대 미술가이자 팝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였습니다. 하위문화인 ‘오타쿠’를 미술이라는 고급문화에 접목시켰다는 평을 듣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일본의 전통 미술, 전래 설화 등, 대중문화를 서양문화에 접목시켜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작가입니다. 오타쿠 문화란 1970년대에 일본에 나타난 서브컬처의 팬들을 총칭하는데, 그 기원은 일본의 엘리트 집단인 게이오 대학의 SF연구회에서 “어처구니없는 하위문화 즐겨보는 게 어때?”, 하면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행동 방식,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부르조아 계층이 하급 문화를 즐긴다는 발상이 기발합니다.   



17blue5.jpg Photo: Young-Joo Rhee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대형 작품들은 만화적인 단순함과 원색적인 색깔들로 인해 더욱 화려하고 압도적이었는데, 블루는 동화적인 꽃그림들보다 해골들이 주체인 그림을 바로 앞에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해골을 그린 것은 3.11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폭파 등, 일련의 사태를 겪은 후에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티스트라는 직업의 사람은 사람들의 위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진 이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 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개인적이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걸 읽은 기억이 납니다. 유모차에서 내려 주었더니 블루는 넓은 화랑의 이 방 저 방으로 종종 뛰면서 엄청난 크기의 많은 그림들과 설치 작품들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17blue6.jpg Photo: Young-Joo Rhee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이 위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바스키아 영화에서 내가 곧 대중이라는 말과 오버랩 되어 예술의 존재 이유를 곱씹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두 살 조금 넘은 블루는 예술이 뭔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나이지만, 그 나이만큼의 정서로 그림이며 조각들을 감상(?)했습니다. 예술가적 감성을 심어준 바스키아의 어머니처럼 할머니와 함께 한 갤러리 산책이 미래의 블루에게 아름다운 정서로 영혼에 심어졌을 것이란 믿음으로 블루와의 갤러리 산책은 그 의미가 있었습니다. 교육이란 이런 사소한 일상들 속에서 이루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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