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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선인장 (10) 내년에 또...진인사대천명



일차선, 이차선... 아니면 지방도로로 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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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 Im Lee, Happy Holidays, 2009, Watercolor on Paper, 12.5 x 10 inches



월이 갈수록 배달되는 연말 카드 수가 점점 줄어든다. 인터넷 탓일까? 창가에 놓고 밖을 내다볼 때마다 들여다본다. 보내는 카드 없이 받기만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연말이 다가오면 카드뿐만 아니라 친구 중 한두 명이 항상 잊지않고 조심스럽게 교회나갈 것을 권하며 종교 서적을 보내오기도 한다. 

“자기는 다 갖췄는데 하나님을 영접 못 해 안타까워."

"구원받아야 천당 가지.” 

"교회 안 나가면 지옥 가요."라 했던 동네 아저씨보다는 훨, 아주 훨씬 낫지만.


아주 오래전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학 졸업 후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가장 친한 친구 둘과 만났다. 촛불 아래서 술잔을 부딪치며 각자 바람을 중얼거렸다.


한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림 같은 집에 살며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층계를 내려와 퇴근해 돌아오는 남편을 반기고 싶다'며 그저 그런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 장면같은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소원대로 저택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또 다른 친구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그림 그리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50년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전혜린은 당시 먹물 먹은 여성들의 슬픈 우상이었다. 전혜린을 흠모했던 이 친구는 결국 파리로 유학 가서 네덜란드 남자와 결혼해 암스테르담에서 작업에 몰두하며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쎄 나는 두 친구보다는 남자들이 홱 가닥 뒈잡아지는 모양새가 아니라서 거창한 소원은 바라지 못하고 선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외국에 나가서 공부도 작업도 계속하고 싶었지만, 한국을 떠나는 것이 꿈같던 시절이라 감히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간절히 바랬었는데, 선생을 하다 뉴욕까지 왔으니.


‘간절히 바라며 노력하면 적어도 비슷하게는 될 수 있다’는 것을 살면서 여러 번 느꼈다. 우리 집의 딱히 정해진 가훈은 아니지만 ‘진인사대천명’,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온 힘을 다한 다음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나이가 든 지금도 그림 말고 다른 소원이 있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만약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온 힘을 다하지 않아 하늘의 뜻이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지 어떡하겠는가! 친정아버지 말대로 ‘일차선이 아니면 이차선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요즘 포장도 잘 돼 있는 지방도로로 가면 되는데 뭔 걱정이냐?’


내리는 눈송이처럼 각각 흩어져 바삐 살아가는 독자 여러분의 ‘원하시는 일들이 새해에는 꼭 이루어지시길 바라며 추운 겨울 포근하게 보내세요.’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최근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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