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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빨간소년, 이산 가족과 메트에서 상봉



Goya and the Altamira Family


April 22–August 3, 2014

@Gallery 62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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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트뮤지엄 소장 빨간 소년 마누엘의 아빠 알타미라 백작(왼쪽부터, 에스파냐 뱅크 소장), 엄마 마리아와 여동생 마리아(메트뮤지엄 소장), 큰형 빈센테(개인 소장), 에스테베가 그린 작은 형 후안(클리블랜드뮤지엄 소장), 그리고 나 마누엘(메트 소장).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그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뮤지엄. 정면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즈의 조각이 앉아있고, 북쪽 입구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조각이 우뚝 서있다. 피카소와 가우디 이전, 벨라스케즈와 고야는 스페인 미술사의 두 쌍두마차였다.



IMG_0773.JPG 고야의 방 #612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고야 컬렉션은 스페인의 자부심인 프라도뮤지엄이나 왕립미술아카데미 등지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인물화와 드로잉이 주목할만 하다. 


지난해 5월 보수 공사를 거쳐서 디스플레이된 메트 2층의 유럽회화 갤러리, 1250-1800 중 #612엔 고야가 그린 인물화와 고야의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 몇 점이 있다. 메트는 대신 고야의 드로잉 컬렉션이 풍부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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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가 소장한 프란시스코 고야(1748-1828)의 인물화 중 스타라면, 단연 빨간 옷을 입은 귀족 소년 마누엘(Manuel Osorio Manrique de Zuñiga, 1784–1792)이다. 마누엘 소년은 2001년 뉴요커 잡지의 메트뮤지럼 컬렉션 소재 표지에도 등장했던 귀염둥이로 별명이 ‘빨간 소년(Red Boy)’. 그러나 여덟살 때 세상을 떠났다.


초상화로 남은 마누엘은 이제까지 아빠, 형제와 떨어져서 살아왔다. 메트뮤지엄 내에서도 엄마와 떨어져 있었다. 이번에 마누엘이 아빠, 형제, 여동생과 헤어진 지 처음으로 메트뮤지엄에서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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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뮤지엄이 4월 22일부터 8월 3일까지 갤러리#624에서 알타미라 백작 가문의 재회전 ‘Goya and the Altamira Family’을 열고 있다. 

메트 소장 3점을 비롯, 마드리드의 에스파니아 뱅크, 클리블랜드뮤지엄, 그리고 개인 소장가로부터 대여해온 알타미라 가족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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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에스파냐 뱅크의 주주로 이 은행의 이사였던 알타미라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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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의 아버지 알타미라(*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로 유명한) 백작 빈센테 호아퀸(*에스파냐 뱅크 컬렉션)은 에스파냐 뱅크의 재력가였다. 그러나, 이 알타미라 백작은 체구가 아주 작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다리를 길게 뻗어 크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듯한 제스쳐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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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알타미라 백작 부인 마리아와 딸 초상화(*메트뮤지엄 컬렉션)다. 알타미라 백작 부인은 7명의 자식을 두었다. 안고 있는 딸은 네째 딸 마리아 아우구스티나(1787년생). 그러니, 빨간 소년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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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개와 함께 포즈를 취한 장남 빈센트(1777년 생, *개인 소장가)이다. 장남이라서인지 근엄한 표정이지만, 옆에 뛰어 오르는 개가 유머를 가미했다. 



오른쪽은 마누엘 오소리오(1784년 생, *메트뮤지엄 컬렉션). 빈센트의 막내 남동생으로 8살 때 사망하게 된다. 

  마누엘은 장남인 형처럼 밖에 나설 필요가 없어서 애완 동물 사이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세 마리의 고양이, 오색방울새(goldfinch)에 둘러 싸여 있다. 새가 물고 있는 쪽지에 고야 자신의 서명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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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백한 소년은 고야가 아니라 아구스틴 에스테베 이 마르케스의 작품이다.

후안(1780년생)은 마누엘의 형이자 빈센트의 동생이다. 그러나, 후안도 1785년 다섯살 때 사망한다. 이 초상화는 후안이 사망하기 직전에 위임받아 사망한 후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새장에는 날아가는 새와 God를 의미하는 Dios가 적혀 있다. 


고야는 벨라스케즈보다 인물화의 테크닉이 떨어질지언정, 동물을 초상화에 등장시켜 다이나믹한 움직임과 유머를 추가한다.




8세에 요절한 '빨간 소년' 마누엘(1784-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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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뮤지엄의 고야 방 #612

Goya's works at Metropolitan Museum of Art/Gallery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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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프라도뮤지엄의 고야  Goya at Museo del Prado, Madrid                                




거칠은 붓질의 고야는 궁정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프랑스가 조국 스페인을 침공하자 이 실황을 생생하게 그린 걸작으로 애국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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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초 마드리드를 방문했을 때 프라도뮤지엄(Museo del Prado)에서 그의 걸작  1808년 5월 3일의 처형(The Third of May 1808, 1814)을 볼 수 있었다.



고야가 귀족 초상화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색채의 위 그림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세상을 들썩거리게될 누드화도 그렸다. 프라도뮤지엄에 나란히 전시된 누드의 마야(The Nude Maja, ca. 1800)와 옷 입은 마야(The Clothed Maja, ca. 1803)는 경비원들이 사진 촬영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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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에는 블랙 페인팅을 위한 갤러리가 따로 있었는데, 어둡고 거칠은 석탄 인상주의 화풍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드리드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 뮤지엄

Goya at Museo de la Real Academia de Bella de San Fernando, Madrid, Spain



마드리드의 왕립미술아카데미 뮤지엄에는 고야의 초상화와 심지어는 그가 쓰던 이젤도 전시되어 있었다. 



00IMG_8552-1785.jpg 40세 경의 고야(17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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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고야가 쓰던 이젤을 황금 종려나무 잎사귀로 장식해 전시 중.



00IMG_8557-1815-self.jpg 고야의 자화상, 1815


00IMG_8554.jpg 풍자가 넘치는 고야의 걸작 '정어리 매장하기' (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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