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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시대 팜므 파탈의 최후 '마농(Manon)'

메트 오페라 10월 26일 세계 2200여개 극장 라이브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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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2019-20 시즌은 드라마틱한 출발이었다. 9월 23일 조지 거쉰 작곡의 흑인 이야기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를 근 30년만에 리바이벌하면서 #BlackLivesMatter 시대에 야심찬 오프닝을 했지만, 다음날 #MeToo 파동으로 '오페라의 왕' 플라시도 도밍고가 수퍼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와 공연할 예정이었던 '맥베스(Macbeth)' 출연을 전격 취소했다. 도밍고는 앞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복귀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가 버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 시즌 메트에는 미투 시대와는 정반대편의 여인 마농(Manon)의 오페라 두편이 무대에 올려진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카르멘(Carmen)' '토스카(Tosca)' '나비 부인(Madama Butterfly)' 등 인기 오페라의 대부분 여주인공은 팜므 파탈(Femme Fatal)로 금지된 사랑을 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여성들이다. 가부장적인 시각의 스토리에서 소프라노들은 무대 위에서 무수히 죽어갔다. 극의 결말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문제의 화근이었던 여성을 죽임으로써 남자들이 평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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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하필이면 이런 때에 팜므 파탈의 전형 마농이 쥘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 작곡의 '마농(Manon)'과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작곡의 '마농 레스코(Manon Rescaut)', 두개 오페라 버전으로 메트에 리바이벌된 것이다. 이 두편은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 1697-1763)의 소설 '기사 데그리외와 마농 레스코(L’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마스네의 5막 오페라 '마농'은 1884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됐고, 푸치니의 4막 오페라 '마농 레스코'는 9년 후인 1893년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지오에서 초연됐다. 마스네는 또한 1894년 속편 격인 1막 오페라 '마농의 초상(Le Portrait de Manon)'을 같은 극장에서 초연했다. 이 작품은 걸작으로 평가됐지만,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 않는다. 한편, 1974년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은 마스네에 곡에 안무로 런던 로열발레에서 초연했다. 1968년엔 카트리느 드누브 주연의 영화('Manon 70')로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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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쥘 마스네가 '베르테르(Werther, 1892)'와 '타이스(Thaïs, 1894)'로 명성을 누리기 전 그의 첫 히트작인 '마농'은 아미앙의 16세 처녀 마농과 백작의 아들 드 그리외 기사의 러브 스토리다. 이들은 첫눈에 반해 파리로 도피해 살다가 기사의 아버지, 백작의 반대로 헤어진다. 또한, 마농은 머티리얼 걸로 변신한다. 마농은 향락에 빠졌다가 신부가 된 드 그리외와 재회하지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박을 하고 큰 돈을 따지만 속임수 혐의로 둘다 체포된다. 


그리외는 아버지 백으로 풀려나지만, 마농은 감옥으로 향하고, 마침내 둘은 재회하지만, 마농은 그리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투란도트' '나비 부인' 등 이국적 풍광을 좋아하는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프레보의 원작대로 뉴올리언스에서 결말을 내리지만, 마스네는 프랑스의 길가에서 종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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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마농'은 원작의 18세기를 19세기말 파리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를 배경으로 각색한 로랑 펠리(Laurent Pelly)가 연출했으며,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마우리지오 베니니(Maurizio Benini)가 지휘봉을 잡았다. 


마농 역의 소프라노 리세트 오로페사(Lisette Oropesa)는 소녀에서 사치에 빠진 요녀까지 변화무쌍한 마농을 풍부하고, 컬러풀한 성량으로 소화했다. 하지만, 농염한 마농으로는 연기가 아쉬웠다. 오로페사는 안나 네트레브코가 아니다. 하지만, 특히 3막의 "청춘을 즐기자. 봄을 기다려 오는 날을 즐기자/ Obéissons quand leurs voix appelle"에서 압도했다. 오로페사는 내년 2월엔 베르디 작곡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로 마농과 유사한 '팜므 파탈' 비올레타로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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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테너 마이클 파비아노(Michael Fabiano)는 순수한 사랑에 빠진 백작의 아들에서 신부가 되었다가 마농의 유혹으로 속세에 돌아오는 드라마틱한 그리외 기사의 갈등을 파워풀한 보이스와 서정적인 음색으로 소화했다. 2막 파리의 아파트에서 마농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감성적인 선율의 아리아 "눈을 감으면 저멀리/ En fermant les yeux je vois…"를 사랑에 빠진 기사의 모습을 절실하게 연기했다. 


오로페사와 파비아노는 3막 생 쉴피스 성당에서 재회하며 부르는 유혹과 격정의 듀엣 "내 맘속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여 사라져 다오!/Ah! fuyez douce image"에서 "당신의 손을 옛날처럼 쥐고 있는 것은 내 손이 아닌가요?/ N'est-ce plus ma main ?"로 호흡을 보여주며 성(교회)과 속(애욕)의 갈등을 폭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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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한편, 기사의 아버지 드 그리외 백작 역은 베테랑 베이스 연광철(Kwangcheol Youn)씨가 무대에 올라 긴 호흡의 발성으로 에코우를 발산하며 위엄있는 아버지상을 보여주었다. 연광철씨는 2004년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 역으로 메트오페라에 데뷔한 후 '트로이의 사람들(Les Troyens)',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리골레토(Rigoletto)',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 '로미오와 줄리엣(Roméo et Juliette)' 등에 출연해왔다. 이번 시즌엔 베를린국립오페라의 '삼손과 데릴라(Samson et Dalila), 바르셀로나 리세우그랜드시어터의 '아이다(Aida)' 함부르크국립오페라의 '시몬 보카네그라(Simon Boccanegra)'와 '파르시팔(Parsifal)'에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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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그뤼외 기사와 백작을 제외하고 '마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한결같이 한량꾼이다. 마농의 사촌 레스코(바리톤 아서 루친스키, Artur Ruciński)는 노름꾼이며, 귀요 드 모르퐁텐(테너  카를로 보시, Carlo Bosi)과 드 브레티니(바리톤 브레트 폴레가토, Brett Polegato)는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바람둥이 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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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샹탈 토마스(Chantal Thomas)의 세트는 계단과 벽을 주조로 한 미니멀리즘의 극치다. 1막의 아미앙 목로술집은 마치 카드보드 종이로 만든 장난감 회색도시처럼 보인다. 베르디, 로트렉, 드가, 쇠라 시대를 떠올리는 모자를 쓴 신사들은 계단의 상층에, 여인네들은 아래층의 '감옥같은' 창문을 통해 등장한다. 남성과 여성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막의 마농과 기사가 사는 파리 아파트는 뒤의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위태로운 기둥 위에 오두막집처럼 올려져 있다. 가난과 두 연인의 비틀거리는 관계를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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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Ken Howard / Met Opera, 2012


3막의 축제일 부르바르 프로미나드 장면은 세트의 구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움직인다. 에드가 드가에서 튀어나온듯한 댄서들이 군무를 하지만, 조엘 아담(Joël Adam)의 안무를 한껏 발휘하기엔 무대가 비좁다. 2장의 생쉴피스 성당은 스테인레스 창문도 성화나 조각도 없이 4개의 큰 기둥이 비틀어지게 설치되어 두 연인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또, 4막의 파리 도박장은 마치 레지스탕스의 도피처같으며, 5막은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고적한 길가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소박한 세트는 벨 에포크 시대를 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제작비 절감이나 디자이너가 게으른 탓을 나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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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et's "Manon." Photo: Marty Sohl / Met Opera


연출가 로랑 페리는 의상도 담당했다. 도박장에서 마농의 핑크 드레스는 존 싱거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회화 '마담 X'와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Gentlemen Prefer Blondes, 1953)'에서 마릴린 먼로의 핑크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듯한 다크 핑크의 드레스로 마농의 팜므 파탈 이미지를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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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메트오페라 '마농' 공연 후 연광철씨(왼쪽에서 세번째) 등 출연진과 지휘자 마우리지오 베니니가 인사하고 있다.


'마농'에는 베이스 바리톤 차정철(Jeongcheol Cha)씨가 근위병으로 출연한다. 메트 코러스에는 소프라노 이승혜(Seunghye Lee), 알토 최미은(Catherine MiEun Choi), 테너 정연목(Christian Jeong), 이주환(Juhwan Lee), 베이스 이요한(Yohan Yi)씨 등 한인들이 활동 중이다. 러닝타임 3시간 52분. 10월 26일 오후 1시 공연은 세계 73개국 2천여개 극장에서 'The Met: Live in HD'로 생중계된다. 10/5, 19, 22, 26 공연.

https://www.metopera.org/season/2019-20-season/manon



delfini2-small.jpg *오페라 '마농' 줄거리 <ClassicKorea>

*메트오페라하우스 그랜드 티어 레스토랑(Grand Tier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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