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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에 반기를 들고 싶어지는 이유들 

Black Hollywood: Heroism & Violence

12 Years A Sla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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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Years A Slave  Photo: Fox Searchlight Pictures

2013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집권 제 2기 출범 후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는 더욱 더 흑인 취향의 작품을 쏟아냈다. 
올 할리우드의 컬러는 단연 블랙이었다. 주말 극장가에서는 흑인 주연의 사회물 ‘버틀러(Butler)’나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 전기 영화 ‘42’에 인기 코미디언 타일러 페리 주연이나 흑인 캐스트의 로맨틱 코미디도 범람했고, 흥행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바야흐로 흑인 영화가 날개 돋힌듯 팔린 한 해였다.

작품성에서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은 흑인 영화는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일 것이다. 뉴욕비평가협회를 비롯 대도시 비평가들이 찬사를 보냈으며, 골든글로브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3월 2일 열리는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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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아카데미상은 흑인 주제 영화 ‘링컨’(Lincoln)이나 ‘장고 언체인드(Django Unchained)’이 강세를 보였었다. 그러면, 제 86회 아카데미상의 최강 후보로 떠오른 ‘노예 12년’은 흠잡을 데 없는 걸작일까? 

영국의 흑인 감독 스티브 맥퀸이 연출한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건조한 전기영화 '링컨'이나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발칙한 노예 서부극 '장고 언체인드'보다 진지하게 역사를 접근한다. 그러나 ‘노예 12년’은 교육적 효과가 있을지언정, 걸작으로 남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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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웅주의

영화 '노예 12년'에서 거부감을 주는 것은 주인공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의 영웅주의다. 이 영화는 원래 자유인이었던 흑인 솔로몬 노텁(치웨텔 에지오퍼, Chiwetel Ejiofor), 즉 제목처럼 '한 명의 노예(A Slave)'에 관한 이야기다. 뉴욕에서 자유 노예(free negro), 바이올린 연주자로 백인들처럼 평화롭게 살다가 납치되어 루이지애나의 농장에서 12년간 노예로 생활한 후 기적적으로 자유를 찾은 노섭의 자서전을 원작을 스크린에 옮겼다.  

런던에서 태어난 아티스트 출신 스티브 맥퀸 감독은 노섭의 억울한 노예 생활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잔혹성에 대해 냉정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노섭이 어떤 이유에서든 운좋게 자유의 신분에서 노예로 추락했다가 가정으로 돌아가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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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프리카에서 배에 실려 미국에 팔린 억울한 노예들의 삶은 30년, 60년도 정당하다는 말인가? 노예의 역사는 1인의 12년으로 종식된 것이 아니다. 수십 수백만명의 흑인들이 링컨의 노예해방을 거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을 거쳤어도 백인과 동등하게 인간으로 취급되는데는 200여년이 걸렸다. 12년은 허구의 시간처럼 보인다.

'노예 12년'은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지만, 주인공 솔로몬의 노예 탈출, 자유 탈환 스토리 자체는 기타 흑인 노예들의 참혹한 삶을 간과하는 1인 영웅주의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노예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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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브래드 핏

솔로몬을 구제한 사람이 백인 브래드 핏(사무엘 베이스)이라는 점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이 영화는 솔로몬이 행복한 가정(home)에서 납치되어 루이지애나의 노예 농장(1, 2, 3루)에 팔려갔다가 자유를 찾아 홈으로 돌아오는 ‘야구’ 같은 이야기다. 솔로몬을 구원한 것은 캐나다 출신 목수 브래드 핏이다. 영화 후반에서 노예 해방주의자, 즉 구원투수 브래드 핏의 등장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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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작비를 댄 프로듀서가 브래드 핏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핏은 영화도 구제한 구세주인 셈이다. 이 노예 해방가, 브래드 핏이 카메오처럼 등장한 후 솔로몬은 극적으로 악한 농장주 엡(마이클 파스벤더 분, Michael Fassbender)으로부터 벗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솔로몬이 가족과 포옹하면서 영화는 갑자기 끝나버린다. 이 급격한 결말에서 영화의 설득력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노예 12년’가 오레오 쿠키처럼 흑백 영웅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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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폭력 장면

‘노예 12년’은 보기에 불편한 영화다. 백인 농장주와 흑인 노예들의 삶을 대조시키기 위한 잔혹한 고문 장면이 지나치게 길다. 퀜틴 타란티노도 ‘장고 언체인드’에서 흑인 노예들을 벌거벗기고, 긴 고문 장면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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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맥퀸 감독의 쇠사슬에 묶이고, 나무에 매달려 매맞고, 흑인 여성을 때리는 폭력 장면은 더욱 더 길고, 더 잔혹하다.

관객은 마치 자신이 고문을 당하고 있는듯한 착각마저 들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목화 농장과 대비되는 인간의 추악한 잔인성과 부조리한 역사의 흔적인 노예 잔혹사에 대한 응징의 이미지가 관객을 너무 고통스럽게 만든다. 관객의 존엄성을 말살한 것이 아닐까?

파스벤더가 맡은 백인 농장주에 의해 성착취 당하면서도 인간으로서 존업성을 보여주는 노예 루피타 니용고의 누드 장면도 지나치게 길다. 퀜틴 타란티노 역시 '장고 언체인드'에서 흑인 남자 노예의 누드 씬을 길게 찍었다. 같은 백인이었다면, 벌거벗은 몸을 그토록 길게 보여주었을까?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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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년 노예’는 장점도 많은 작품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출신 스티브 맥퀸 감독은 아웃사이더로서 이제까지 할리우드의 노예 주제 영화에 반기를 들었다. 노예들의 참혹한 일터인 목화 농장 장면은 어느 회화보다 아름답다. 그 대자연 속에서 스멀거리는 인간의 추악성과 부당한 제도에 과감하고 치밀하게 메스를 가한다. 안 보면 미안해지는 영화, 봐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보는 데는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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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스티브 맥퀸 감독은 1월 16일 열린 뉴욕영화비평가협회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시상식에서 뉴욕의 흑인 비평가 아몬드 화이트가 맥퀸에 대해 "창피한 도어맨이자 쓰레기 치우는 이"라고 소리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화이트는 '12년 노예'에 대해 "고문 포르노(torture porno)"라고 평한 바 있다. 뉴욕영화비평가협회상은 38명이 투표한다.
화이트는 이 사건 이후 뉴욕비평가협회로부터 축출됐다. 흑인 감독 Vs. 흑인 비평가와 다양성을 존중해야할 뉴욕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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