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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초기 여성사진작가전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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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뮤즈였던 레니 리펜슈탈은 역사상 위대한 선전영화와 최초의 올림픽(1936 베를린)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2003)

나치 선전영화, 1936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연출 거장 

 

그녀는 무용수나 수영선수, 혹은 배우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세기의 독재자를 만난 후 예술가로서 그녀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l)은 아돌프 히틀러의 총애를 받으며 선전영화를 만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펜슈탈은 나치 몰락 후 체포됐고, 재판을 받았으며, 석방됐다. 하지만, 그녀의 나치 협력 전력은 지속적인 비판을 받게 된다. 리펜슈탈은 욕을 많이 먹은 만큼 101세까지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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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본명은 헬레네 베르타 아말리 "레니" 리펜슈탈(Helene Bertha Amalie "Leni" Riefenstahl), 1902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난방회사 사장이었던 아버지는 딸이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했지만, 미혼 때 재봉사였던 어머니는  딸이 연예계로 진출하기를 기대했다. 

 

레니 리펜슈탈은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12살 때는 체조와 수영클럽에서 활동했다. 16살 때 '백설공주'를 본 후 아버지 반대에도 무용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딸에게 발레 교습을 시켰다. 이후 자신의 독특한 해석으로 안무한 춤으로 유럽 순회 공연까지 다녔지만, 발 부상과 무릎 수술로 무용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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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주연 영화 '피츠팔루의 백색 지옥'/ 각본-연출-주연작 '푸른 빛'

 

1924년 발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던 리펜슈탈은 등반가 이야기를 다룬 무성영화 '운명의 산(Berg des Schicksal)'의 포스터를 보고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운명의 산' 감독 아놀드 프랑크에게 연기와 편집기술도 배웠다. 1929년 리펜슈탈은 프랑크와 G. W. 파브스트가 공동 감독한 알프스 등정영화 '피츠팔루의 백색 지옥(Die weiße Hölle vom Piz Palü)'에 등반가로 주연을 맡았다. 

 

1932년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헝가리 감독 벨라 발라즈와 공공으로 연출한 '푸른  빛(Das blaue Licht)'에서 악마로 오해받는 시골 소녀 준타로 주연까지 맡았다. '푸른 빛'은 제 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준타가 완벽한 이상적인 독일여성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던 나치당 리더 아돌프 히틀러는 리펜슈탈에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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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전당대회를 다룬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1936)

 

히틀러와 리펜슈탈은 만난 후 자석처럼 가까워졌다. 리펜슈탈은 1923년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그의 재능에 반했다. 회고록에서 히틀러와의 만남을 이렇게 찬미했다.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거의 묵시록적인 비전을 목격했다. 그것은 내 앞에서 방대한 물줄기가 품어나오며 지구의 절반이 갑자기 갈라지는 것 같아 하늘로 닿고, 땅을 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히틀러는 선전부 장관 괴벨스에 1933년 나치당의 제 5차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리펜슈탈에게 위임하라고 명령했다. 리펜슈탈이 나치 자금으로 만든 첫 다큐멘터리, 선전영화가 '신념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였다. 하지만, 이 히틀러는 반항세력을 숙청하면서 절대적 권력을 얻은 후 필름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히틀러는 이듬해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선전영화도 리펜슈탈에게 위임했다. 100만명 이상이 참가한 이 대회를 담은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전영화로 꼽힌다. 히틀러가 전당대회에 참가하기위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은 마치 신처럼 촬영했으며, 군중의 행진과 히틀러의 연설 장면이 획기적인 촬영과 극적인 연출로 제작됐다. '의지의 승리'는 훗날 '독재자와 전범을 미화한 작품'으로 비판의 타겟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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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올림피아'/ 두 조수의 도움으로 트래킹숏을 찍는 레니 리펜슈탈

 

1936년 레니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위임으로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올림피아(Olympia)'를 연출하게 된다. 성화 봉송에서 당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까지 올림픽 게임 이모저모를 장엄한 영상미와 역동적이며 독창적인 미학으로 묘사됐다. 2부작(민족의 제전/ 미의 제전)으로 제작된 '올림피아'는 히틀러의 신격화, 환호하는 군중, 정밀한 행진, 군악대, 히틀러의 연설까지 역동적인 기록영화다. 

 

'올림피아'는 다큐멘터리에서 최초로 트래킹숏(피사체를 계속 추적하는 촬영법)을 비롯, 극단적인 클로즈업, 슬로모션, 수중 다이빙 숏, 하이 앵글, 로 앵글 촬영, 파노라마 항공 숏 등 전례없는 혁신적인 촬영법을 사용했다.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 촬영법은 현대 스포츠 사진의 고전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음악을 정교하게 사용하고, 사운드를 왜곡함으로써 웅장함을 강조하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올림피아'는 궁극적으로 강인한 신체를 가진 게르만족의 우월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나치즘의 선전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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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펜슈탈은 일장기를 달고 출전했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를 집중 조명했고(동메달 남승룡), 이들은 1972년 독일에서 재회했다. 

https://www.spiegel.de/fotostrecke/olympia-1936-der-lange-lauf-den-sohn-kee-chung-fotostrecke-141159.html

  

'올림피아'는 1938년 4월 20일 히틀러의 49세 생일에 최초로 상영됐으며, 리펜슈탈은 그해 11월 미국을 방문해 VIP 대접을 받다. 리펜슈탈은 디트로이트에서 헨리 포드의 영접을 받고, 시카고 엔지니어 클럽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할리우드 제작자 루이스 B. 메이어를 만났고,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판타지아(Fantasia)'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투어에 초대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선전포고 없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자 리펜슈탈은 군복을 입고, 권총을 벨트에 차고, 카메라를 들고 독일군대와 함께 폴란드에 갔다. 콘스키 마을에서 유대계 민간인 30명이 처형되는 현장에서 개입하려 했지만, 독일군의 살해 위협을 받고 포기했다. 그해 10월 바르샤바에서 히틀러의 승리 퍼레이드를 촬영한 후 귀국해 다시는 나치 관련 영화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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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타임'지 표지로 등장한 레니 리펜슈탈/ 1939년 폴란드 종군 사진기자 시절

 

리펜슈탈과 히틀러는 약 12년간 친구 관계였지만, 1944년 남동생 하인츠가 39세에 소련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후 소원해진다. 리펜슈탈이 히틀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해 3월 피터 야곱과의 결혼식에서 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레니 리펜스탈은 전범으로 기소됐다. 그녀는 자신이 나치에 매료됐지만,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무지했으며, 영화미학만을 생각했다고 변호했다. 리펜슈탈은 1945년부터 3년간 연합군의 수용소에 구감되고, 가택연금에 묶었다. 4번의 재판 끝에 결국 나치 동조자로 판명되어 석방된다. 그리고, 나치당 관련 명예소송 50여건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나치 찬양의 과거는 그의 걸작 영화와 함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예술가의 윤리는 작품과 분리될 수 있을까? 

 

리펜슈탈은 자기 생애 최대의 재난은 히틀러와의 만남이었다고 밝혔다. 그녀가 죽는 날까지 "레니는 나치"라고 말할 것이라는 것.결국 리펜슈탈은 나 홀로 작업할 수 있는 사진작가로 전향한다. 1962년부터  아프리카 수단을 여행하며  누바족을 담은 사진집(Die Nuba)을 출간했다. 리펜슈탈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처럼 사진 촬영에서도 조명을 의도적으로 사용해 인간과 배경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뉴욕의 유대인 비평가 수잔 손탁은 이 책의 비평에서 "파시스트 미학에 고착된 증거"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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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전기 'Leni Riefenstahl: Five Lives'(2000)/ 1928년 베를린에서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 안나 메이 왕, 레니 리펜슈탈(Photo:  Alfred Eisenstaedt)/ 록스타 믹 재거와 함께.

 

70세의 리펜슈탈은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촬영했으며,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의 위임으로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와 비안카 재거 부부를 촬영하기도 했다. 1975년 독일의 예술감독클럽은 리펜슈탈에게 최우수 사진 공헌상 금메달을 수여했다. 1976년엔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최고의 게스트(Guest of Honor) 대우를 받았다. 

 

리펜슈탈은 세기말의 불안과 9/11 테러 공격까지 목격했다. 2003년 8월 22일 바이에른의 자택 인근 한 호텔에서 101번째 생일 파티를 한 다음날부터 암이 악화되어 수면 중 사망했다. 리펜슈탈은 1962년부터 40세 연하의 조수 호스 케트너(Hors Kettner)와 여생을 함께 했다. 

 

영화 평론가 폴린 카엘은 '뉴요커' 잡지에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는 여성이 연출한 두 위대한 영화"라고, 게리 모리스는 리펜슈탈이 "남성들이 지배하는 영화계에서 견줄 데 없는 재능의 예술가로 (세르게이) 에이젠스타인이나 (오손) 웰즈와 동등한 레벨의 영화인"이라고 논평했다. 

http://www.artnet.com/artists/leni-riefenstahl/3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July 2–October 3, 2021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October 31, 2021–January 30, 2022

https://www.metmuseum.org

 

*메트뮤지엄 초기 여성 사진작가전 <1> 마가렛 버크-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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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7.28 20:58
    사진작가 레니 리펜슈탈의 눈부신 활약상을 잘 읽었습니다. 영화감독, 사진작가-그 어느면에서도 완벽한 작가이네요. 1936년 베를린 을림픽 다큐멘타리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오른 사진이 감명깊습니다. 그녀의 재능과 미모에 히틀러도 무릎을 꿇었나 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