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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Right Now, Wrong Then) ★★★★★

홍상수 영화는 왜 나를 슬프게 하나?
우리 삶도 리와인드(rewind)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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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허진호 감독 '봄날은 간다'(2001)
"Love fades away." -우디 알렌 감독 '범죄와 비행'(1989)


최근 유부남 홍상수(Hong Sang-soo) 감독이 배우 김민희와 열애 중이라는 뉴스가 터졌다. 홍 감독은 지난해 9월 가출한 후 지금은 해외 체류 중이라는 소식이다. 최근 뉴욕의 영화박물관(American Museum of Moving Image)에서는 홍상수 전작 회고전 'Tales of Cinema: The Films of Hong Sang-soo June 3-19)'이 열렸고, 지난 24일엔 지난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제목은 일부러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고. Right Now, Wrong Then/2015)'가 링컨센터에서 개봉됐다.  

우연하게도 지금 뉴욕에서 상영 중인 두편의 한국영화가 서로 다른 색깔의 러브 스토리다.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유지태의 대사(봄날은 간다)를 연상시킨다.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산 연인들의 이야기다. 한편,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우디 알렌 영화 대사 "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라우"를 떠올린다. '지금은...' 사랑의 변질성을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홍상수 팬들에겐 이미 익숙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특별한 볼거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보통 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스펙터클한 풍광, 아름다운 로케이션, 화려한 스타 페이스(대부분 생얼굴),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 갈등/드라마는 없다. 그의 영화는 소도시나 변두리같은 장소에서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 보통 일상을 보여준다.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로맨스와는 달리 홍상수 영화는 일상의 풍경을 가감없이 포착해낸다. 

홍상수 영화는 관객을 현실도피시키기보다는 자기 분석의 단서를 제공하는 테라피스트같다. 그는 복잡 미묘한 인간의 심리, 마음의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홍상수 영화다.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감정적이며, 위선적인가를 다시 발견하게 만들어준다. 뉴욕의 우디 알렌(Woody Allen),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Eric Rohmer) 영화에서 보아오던 남녀의 도덕성을 한국적인 정서로, 현미경적인 섬세함으로, 의사의 수술칼처럼 날카롭게 해부한다.

홍상수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슬픈 영화다. 보고난 후 며칠간 앓게 만들 수도 있는 중독적인 작품이다. 왜 그럴까?

감독 데뷔 20년, 17편의 영화가 거의 반복적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해왔다. "내가 아는 것만 영화로 만든다"고 밝혔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반자전이다.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들은 자신처럼 영화감독이나 교수, 영화비평가들이다. 심지어는 홍상수의 셔츠 위에 스웨터와 청바지나 면바지 차림, 혹은 점퍼를 걸친 '홍상수 패션'으로 등장하고 있다. 때때로 배우들이 홍상수 감독의 못을 입고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의 로버트 드 니로나 데이빗 린치 영화의 카일 맥라클란처럼 남자 주인공들은 홍 감독의 분신(alter-ego)인 셈이다. 

그의 영화 중에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는 이전 영화들을 넘어선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 꼼꼼히 보면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홍상수 자신이 배우 김민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부인에게 하는 고해성사이며, 관객에게 주는 인생철학이자, 영화에 바치는 홍상수 이론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왜 띄어쓰기를 하지않았을까? 
글과 말에는 쉼표와 마침표가 있고, 영화에는 편집이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쉼표와 마침표 없이 찰나(刹那)와 찰나가 이어져서 연속적으로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말대로 "인간은 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굴 수 없다". 우리는 늘 '가지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열망을 안고 살아간다.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굴 수 없다. 왜냐하면, 강물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기 때문이다.
(No man ever steps in the same river twice, for it's not the same river and he's not the same man.)" 
 -Heraclitus-

홍상수는 스토리를 두가지 버전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같은 인물, 유사한 스토리지만, 디테일이 다르며, 따라서 인물들의 반응과 감정이 다르게 전개된다. 반복(repetition)이 아니라 변주(variation)다. 1부의 제목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2부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제목의 시간(그때와 지금), 시시비비(是是非非, 맞다/틀리다)가 의미심장하다. 과거와 현재, 시시비비는 우리 삶의 중추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시행착오를 하며, 사람들에 의해 재단당하며, 후회를 하며, 꿈을 꾸는 이성과 감정의 동물 호모사피엔스가 아닌가. 



#1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Right Then, Wro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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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가 복내당에서 희정을 만나는 장면에 한복입은 두 마네킹이 섬짓하다. 커피숍에서 희정은 모델 출신 화가로 외로울 틈이 없다고 말한다. 춘수는 희정의 작품에 대해 극찬한다. 그러나, 카페에서 춘수가 유부남이자 여배우, 스탭과 스캔달이 있던 바람둥이라는 사실이 폭로된다.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1부의 유부남 영화감독 함춘수는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 감언이설하는 속물이다. 춘수의 나레이션이 그의 속셈과 행동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화가 희정은 춘수에 실망하며, 춘수의 연애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어느 겨울날 수원에서 열리는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초청받은 감독 함춘수(정재영 분)가 실수로 하루 일찍 왔다. 시간을 죽이려고 하는데, 두 여자가 눈에 띈다. 하나는 영화제 스탭 보라(고아성 분), ‘너무 예쁘네, 쪼그만놈이 너무 예쁘고 너무 젊어 조심해야 돼. 너무 예뻐.’라고 나레이션을 한다.

두번째는 모델 출신 화가 윤희정(김민희 분)이다. 1부에서 춘수는 두 여자를 꼬시려고, 아첨을 한다. 보라와는 썰매를 타고(*2부에는 없는 장면), 저녁에 연락한다고 말한 후 전화하지 않는다. 춘수는 사탕발림과 실언을 남발하고 있다. 

궁궐에서 만난 윤희정은 춘수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유명한 감독이라는 것은 안다. 커피숍에서 춘수는 '우리는 예민한 사람들' 등 말로 맞장구치고, 유혹하며, 희정의 화실에서는 그녀의 컬러풀한 추상화를 무조건 '좋다'고 극찬한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위해서다. 희정은 작업실에서 '녹차를 사겠다며'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한다.(*2부에는 빠졌다) 이는 윤희정이 달콤한 말만 해대는 정재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있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 행동이다. 희정에게 빠진 춘수는 "잠깐만에 아주 멀리 아주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다, 지금"이라고 나레이션을 한다.

춘수와 희정은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겨서 소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서 춘수는 희정에게 "너무 예쁘세요. 눈이 부셔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숨기고 있다. 희정이 선배 수영(최화정 분)와 약속이 있다고 하자 춘수는 "조금 전까지는 완전했었는데..."하며 음흉한 속성을 느러낸다. 이들은 수영의 카페  '시인과 농부'에서 춘수의 팬인 시인 서영화(주영실 분), 김원호(기주봉 분, *가장 실망스러운 캐릭터, 결정적인 대사를 주었어야 한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한다. 이때 수영은 춘수가 유부남으로 여배우, 스탭과 스캔달이 있었던 바람둥이라는 소문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희정에게 하는 것을 쪽집개처럼 집어내 폭로한다. 춘수는 당황해서 결혼사실을 인정하고, 실망한 희정은 술자리를 뜬다. 

다음 날 관객과의 대화를 끝낸 춘수는 보라에게 비평가(유준상 분)를 비판한다. 그를 "뻔뻔하고, 무식한 속물 덩어리"라고 쏘아붙인다. 극장에 서영화가 찾아와 춘수에게 시집을 건내준다. 한번도 춘수 영화를 본 적이 없는 희정은 영화제에 나타나지 않는다. 춘수의 연애행각은 완전 실패로 돌아간다.


#2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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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춘수가 담배피우러 희정과 옥상에 올라간다. 희정은 불상과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영의 카페에서 춘수는 취하고, 두 여인 앞에서 옷을 벗는 추태를 보인다. 희정을 집에 데려다주는 밤길, 희정 엄마가 변태 감독과 어울리지말라고 전화에서 호통을 친다. 통화 후 춘수는 희정의 뺨키스를 받는다. 다음날 희정은 극장에 나타났고, 수영이 전날 밤일을 '예술가'라 이해했다고 말해준다. 희정은 춘수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되며, 모두 찾아 볼 것이라고 말한다. 춘수는 떠나고, 영화가 끝난 극장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 틀리다'는 1부를 리와인드하면서 '만약에 What if...'로 변주한다. 2부에서 춘수는 솔직한 인물이다. 예술가로서 비판도 날카롭게 하며, 또한 예술가로서 감정적인 추태도 보인다. 오히려 이점이 희정의 호감을 사고, 플라토닉한 로맨스가 된다. 보다 나은 춘수가 등장하는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영화 제목이 되었다.

함춘수는 궁궐에서 화가 희정을 만난다. 2부에선 보라에게 추근거리지 않고, 희정에게 보다 솔직한 자세로 대한다. 희정과 행궁을 떠날 때 비닐봉지를 훔쳐본다거나, 희정의 화실에선 "상투적이며, 자기 위안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며 혹평한다. 1부에선 희정이 붓에 분홍 물감을 묻힌 후 캔버스에 칠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2부에선 녹색 물감을 묻히는 장면만 나오고,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의도적인 편집이다. 

이어 춘수와 희정은 작업실 옥상으로 올라간다. 궁궐에서 만나 카페, 작업실, 일식집, 또 카페로 닫힌 공간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에서 처음 열리는 공간이다. (일식집 앞을 제외하고는) 옥상에서 희정은 부모 이혼 후 엄마(윤여정 분)과 단 둘이 큰 집에서 살고 있으며, 어느날 도둑이 들었는데, 아무것도 훔쳐가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이는 '마음의 도둑'에 대한 메타포일듯 싶다. 여기서 희정은 불상(미륵황금불상)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고 속내를 말한다. 

일식집에서 춘수는 유부남임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은 23살 때 너무 일찍 결혼했고, 애가 둘이나 있다고. 하지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 "사랑한다"면서 울어버린다. 희정은 춘수가 젊어서 미남이었을 것이라고, '옛날에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라고 대응한다. 춘수는 길가에서 주운 반지를 희정에게 끼워주며 둘만의 즉석 결혼식을 한다. 이어 수영의 카페 '농부와 시인'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춘수가 옷을 벗으며 광란을 한다. 유부남인 것, 희정을 꼬시지 못한 것에 대한 분통과 한풀이일까? 아니면 본능적이고 솔직해진 춘수의 굿거리인가?

춘수는 카페를 나와 술에 취한 희정과 강원도로 가자고 제안했다가 그냥 집까지 바래다 준다. 집으로 가는 밤길 희정의 엄마가 전화로 변태감독과 어울리지 말라며 호통을 친다. 희정은 주눅들은 춘수에게 수영을 추태를 설득하겠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희정은 춘수를 '특이하다' '귀엽다'라고 말한다. 뺨에 키스를 하며, 다음에는 입술에다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는 춘수가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이다) 희정은 엄마가 잠든 후 바로 나오겠다고 말한 후 집안으로 들어간다. 추운 겨울 밤, 춘수는 기다리다가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날 춘수는 영화제 특강을 순조롭게 마친 후 비평가, 스탭 보라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때 희정이 영화를 보러 나타난다. 희정은 춘수에게 선배 수영이 예술가라 이해했다고 말해준다. 춘수는 극장 안에서 희정에게 전날 미안했고, 좋았다고 말한다. 희정은 앞으로 춘수의 영화를 모두 챙겨 보겠다고 약속한다. 춘수는 서울로 돌아가고, 희정은 영화가 극장을 나와 눈이 내리는 거리로 사라진다. 

1부의 춘수는 위선적이며, 때문에 희정과의 로맨스 시도가 불발로 끝난다. 2부의 춘수는 솔직하고, 감성적이고, 추태도 부리지만 때문에 역으로 희정의 환심을 산다. 춘수는 뺨키스로 위로를 받았고, 플라토닉하게 헤어진다. 희정의 선배 수영의 카페 이름이 '시인과 농부'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1부의 춘수는 가식적인 시인 스타일이며, 2부의 춘수는 저돌적인 농부 스타일일 수도. 한 사람 안에는 여러가지의 속성이 살고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른 속성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춘수로 대표되는 남자마다 3부, 4부....무한대의 버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1부는 그때, 2부는 지금이라면 맞고, 틀리고는 춘수 인격의 문제일 것이다. 그때가 과거이며, 지금이 현재라면, 춘수는 부인과 희정을 비교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제목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고 제시하고 있다.    
 
  
#3 영화와 현실 사이: 러브레터와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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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의 중추가 되는 일식집 장면. 롱테이크로 춘수가 결혼했지만, 희정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길에서 주운 반지로 즉석 결혼식을 올린다. 말과 글에는 쉼표와 마침표가 있고, 영화엔 편집이 있지만, 우리의 삶은 마침표없이 편집없이 찰나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관객에 대한 고백 시네마처럼 보인다. 연인이 된 배우 김민희에게 주는 연애편지이자, 부인에게 주는 고해성사이자 최후통첩처럼 생각된다.  

영화의 배경은 겨울이다. 홍상수 감독의 나이(54세)가 육체적으로 겨울은 아니겠지만, 결혼 30년째인 그의 마음은 황폐한 겨울일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메인 주제곡과 예고편에 흐르는 음악은 가곡 '봄이 오면'(김동환 시, 김동진 작곡)이다. 주인공 감독의 이름이 춘수(春樹?), 봄 나무을 연상시키는 것도 우연일까? 감독의 치밀한 설정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봄을 기다려왔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오~

유부남 춘수가 희정(젊은 처자)을 만나는 수원행성 복내당 마루에는 두 명의 한복 입은 마네킹 여인이 앉아있다. 이는 홍상수 감독의 부인과 딸? 아니면, 어머니(*전옥숙 여사, 시네텔 서울 대표)는 아닐까? 엄연히 옆에 있는데, 처음 본 젊은 여자에게 수작을 거는 춘수. 마네킹이 섬뜩한 장면이다. 

춘수는 2부 일식집에서 희정에게 자신이 너무 일찍(23세, 실제 홍상수 감독은 25세에 미국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했다.)고 고백한다. "그때는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때는 나와 그 사람이 반대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때 나는 살려고 그 사람을 붙잡았지요."라는 대사는 사랑 고백, 결혼식 장면과 함께 부인의 가슴에 못을 박을 법한 말이다. 희정은 '우리가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춘수는 거리에서 주운 반지를 끼워주며 즉석 결혼식을 한다. 솔직한 춘수와 순수한 희정의 열망이 화합하는 것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드물게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가 있다. 이 영화는 불교적이다. 희정의 엄마(윤여정 분)이 대문 앞에서 집 근처 불상(미륵황금불상)에 기도를 하는 것과 희정이 화실 옥상에서 불상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으며, 절의 종소리가 들린다. 

불교에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라는 인연설`(因緣說)과 인과응보(因果應報)는 1부와 2부의 내러티브에서 목격할 수 있다. 춘수가 음흉했을 때와 정직했을 때, 유부남임을 숨겼을 때와 고백했을 때, 희정의 작품을 극찬했을 때와 혹평했을 때 희정의 반응은 잘라졌고, 결론도 차이가 났다. 제목을 띄어쓰지 않은 것도 삶이 끊임없는 원인과 결과의 연속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숨쉬며 살아가고 행동하고 연쇄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호모 사피엔스임을 상기시켜준다. 순간순간에 충실하라고 이 영화는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예고편은 2부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춘수가 영화를 보러온 희정과 만나는 장면을 거꾸로 돌리며 '봄이 오면'이 흐른다. 이들의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언어인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변주한 대사들이 자막으로 뜬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춘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언어를 불신한다.  
"말의 힘? 참 웃기고들 있네.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맨날 그렇게 그런 말들을 찾느라고 난린지 모르겠어요. 저는요, 그런 정말 중요한 말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예고편은 말을 불신하는 감독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 영화란 무엇인가? What is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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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영화란 무엇일까요?

함춘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것 같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것들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지금 그런 말들이 지금 제 머릿 속에 떠오른 것들인데, 그런 것들을 소리내어 말로 하면 말이 되겠죠. 그런 것들은 그냥 그런 말입니다. 보시면 영화라는 것도, 저라는 사람도, 또 제가 경험한 모든 것들도, 여러분의 삶도 그런 말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메타영화처럼 읽혀질 수 있다. 홍상수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먼저 홍상수는 두개의 시나리오로 2편을 찍어 한 영화 속에 묶었다. 즉, 리메이크를 오리지널과 병행한 것이다. 1부는 춘수의 '자존심'이 추락한 비극에 가까운 블랙코미디며, 2부는 남녀가 결합하지는 못했지만 해피엔딩의 로맨틱 코미디다. 장르가 미묘하게 바뀐다. 캐릭터와 행동에 따라 드라마가 달라지며, 장르가 결정된다.

홍상수의 카메라는 춘수와 희정을 종종 롱 테이크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감정을 잡아낸다. 나누어 찍으며, 선택한 컷으로 편집하지 않음으로써 현실과 유사한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롱테이크는 제목에서 띄어쓰기 안한 것(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과 같은 효과를 낸다. 우리의 삶은 연쇄고리이며, 삶 자체에선 띄어쓰기란 없다.  

그러나, 1부에서 보라와 썰매타기를 넣고, 2부에서 옥상 장면을 삽입하고, 1부 희정 화실에서 붓에 칠하는 물감색을 분홍, 2부에선 녹색으로 각각 클로즈업함으로써 인물의 심리와 장면의 분위기를 강화하는 몽타쥬. 그런데, 1부에선 희정의 추상화를 보여주지만, 2부에선 생략한다. 홍상수는 같은 장면에 다른 색, '보여주기와 생략하기'로 영화 내러티브 효과를 비교하게 만든다. 우리는 홍상수가 선택한 숏만으로 이야기를 따라 가는 관객이다. 우리가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 

1부에선 춘수가 나레이션을 하는 반면, 2부에선 나레이션이 없다. 1부에선 위선적인 춘수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나레이션이 필요했다. 그러나, 2부에선 춘수의 행동으로 그의 생각을 유추하게 된다.

영화는 우리 눈 앞에서 진행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면,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지금과 그때는 도대체 언제일까? 1부가 오리지널 스토리라면, 2부는 춘수가 서울로 돌아와서 각성하고 새로 만든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춘수는 정직해졌고, 성숙해졌다. 아니면, 2부는 서울로 돌아간 춘수가 꿈을 꾸고 있는 버전일까? 아니면, 여전히 속물인 춘수가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의 버전일까?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삶은 리와인드(rewind)되지 않는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메시지를 기피하는 홍상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같다. 정직하라고, 순간에 충실하라고, 인생은 반복할 수 없다고. 실생활에서 춘수/홍상수 감독은 제 3의 버전으로 젊은 처자 희정/김민희와 열애에 빠졌고, 부인을 떠났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불륜 감독'으로 주홍글씨가 찍혔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은 거장이다. 그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비극도 희극이 될 것 같다.


Right Now, Wrong Then
Elinor Bunin Munroe Film Center(144 West 65th St.)


*사족: 홍상수 감독과 세번의 만남

#1 1992-93년경 영화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라디오(KBS-2FM) 작가를 그만 둔 직후였던 것 같다. '새앙쥐 상륙 작전'의 김정진 감독 소개로 시네텔 서울 PD라는 홍상수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영화에 관련된 TV 프로그램 호스트를 찾고 있었다. 나는 글쓰는 사람이지 미모나 말주변도 없는 프리랜서였을 뿐. 그가 연출한 '작가와 화제작'(SBS-TV)을 즐겨봤다. 이후에 나는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의 작가로 일을 하게 됐다.

(1996년 1월 나는 뉴욕으로 왔고, 한국 영화/비디오 잡지에 통신원으로 일했다. 비디오 잡지 기자가 근사한 영화가 나왔다고 비디오 테이프(VHS)를 보내주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었다. 숨막힐 정도로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미안하지만, 이전의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들이 모두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홍상수야말로 새로운 영화의 시작인데, 나는 아쉽게도 충무로를 떠나 있었다.)

#2 2005년 한국 영화 세편이 뉴욕영화제에 초대됐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과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 상영됐다. 두 상수 감독들과 영화제 게스트 공식 호텔인 57스트릿 파크레인의 해리스 바(Harry's Bar)에서 만났고, 베니스 해리스 바의 인기 복숭아 칵테일 벨리니를 마셨다.

#3 2006년 홍상수 감독이 또 뉴욕영화제에 초대됐다. '해변의 여인'으로 뉴욕을 방문했다. 취재를 하려는데, 홍 감독이 대신 저녁식사를 제안해서 신문사 후배기자 3명과 함께 일식집(이세, Ise)에서 홍감독의 동행인 음악감독과 함께 만났다. 다다미방에서 그 유명한 가위바위보 '진실게임'이 시작되어서 후배들이 자신의 첫 경험과 러브 스토리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홍 감독의 영화 속 에피소드로 등장할 것을 무릅쓰면서(?), 아니면 기대하면서... 그런데, 바깥 테이블에 신문사 김사장님과 LA 본사 박사장님께서 식사 중이셨고, 우리는 본사 박사장님의 선물로 커다란 사케를 선물받아 마시고, 또 마셨다. 우리들은 홍상수 영화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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