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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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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고양이에 몰입한 발튀스 

Vs. 

LOVE와 표지판에 집착한 로버트 인디애나



Balthus Vs. Robert Ind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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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Pollock, One: Number 31(1950), MoMA/ Georgia O’Keeffe, Music, Pink and Blue No. 2(1918),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잭슨 폴락은 왜 액션 페인팅을 했을까? 조지아 오키프는 왜 꽃을 그토록 크게 그렸을까?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특성에는 동기가 숨어있다. 추상표현주의 그룹의 막내 로버트 마더웰이 ‘잭슨 폴락은 그림을 못그린다’고 경멸했듯이 폴락은 드로잉에 열등감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폴락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기 시작해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주자가 됐다. 

조지아 오키프의 전기에 따르면, 오키프는 어릴 적 미술 시간에 교사로부터 ‘너무 작게 그린다’는 꾸중을 듣고 크게 그리게 됐다는 일화가 나온다. 다른 설에 따르면,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교사가 야생화를 들고 ‘그리기 전 자세히 관찰해라’고 가르친 후, 꽃의 부분을 반복해서 그리다가 스타일로 고정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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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                                                                                                로버트 인디애나


올 가을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두 거장의 특별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발튀스: 고양이와 소녀들-회화와 도발(Balthus: Cats and Girls-Paintings and Provocations, 9/25-1/12, 2014)과 휘트니뮤지엄의 ‘로버트 인디애나: 사랑을 넘어서(Robert Indiana: Beyond Love, 9/26-1/5, 2014)는 두 위대한 화가의 유년시절 체험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지배해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전시회다.

발튀스(1908-2001)와 로버트 인디애나(1928- )의 작품은 대조적이지만, 작품 이면에는 유사한 점도 적지 않다.  


▶30년 가까이 뉴욕 뮤지엄에서 도외시되어 왔다. 
소녀를 모델로 한 에로틱한 그림으로 ‘포르노성’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발튀스 전시는 1984년 메트로폴리탄뮤지엄 회고전 이후 근 30년만에 열리는 뉴욕 전시다. 
LOVE 조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85세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뮤지엄 전시는 30여년만이며, 미국 회고전도 처음이다.


▶발튀스와 인디애나, 둘 다 가명을 썼다. 
파리에서 폴란드계 아티스트들 사이에 태어난 발튀스의 본명은 발타자르 클로소프스키,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로버트 인디애나의 본명은 로버트 클락이었다. 하지만, 뉴욕으로 이주한 후 자신이 자란 주 이름을 따서 로버트 인디애나로 바꾸었다.


f425aaa4d218b657c15996bc12d22d60.jpg 엘스워스 켈리

▶사생활이 남다르다.
발튀스는 1967년 35세 연하의 화가 세츠코 이데다와 결혼했으며, 동성애자인 인디애나는 한때 화가 엘스워스 켈리와 연인 관계였다.


0b310a00430c8f3ce30ed352c9056b42.jpg 1992년의 발튀스. 소녀 시벨리와 함께. Photo: Mediamuse

▶미술계에서 떠나 은둔해 살았다.
언론과 인터뷰를 기피하고, 사생활 노출을 기피했던 발튀스는 1985년 77세부터 스위스의 그랑 샬레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1978년 뉴욕을 떠나 메인주의 외딴 섬 비날헤이븐 아일랜드에서 살고 있다.


발튀스: 소녀와 고양이                  


그러면, 발튀스는 왜 고양이와 소녀에 집착했을까?

메트뮤지엄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미추(Mitsou)’ 시리즈는 발튀스가 11살 때 잃어버린 고양이 미추를 찾아나서는 모험을 그린 40컷의 잉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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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튀스의 '미추' 시리즈 1                                                              The King of Cats, 1935, Fondation Balthus, Switzerland


1920년 발튀스의 어머니와 연인 관계였던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이 그림을 발견하고, 출판을 도와주었다. 

어린 발튀스의 눈에 어머니와 릴케의 연애나 고양이의 실종은 커다란 사건이었을 것이다. 발튀스 전기에 따르면, ‘늘 어린이로 남고 싶었다’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1908년 2월 29일에 태어난 발튀스는 4년마다 나이를 먹었던 셈이므로 영원히 소년기에 고착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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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e with Cat, 1949,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발튀스는 27세에 ‘고양이의 왕’이라는 자화상에 고양이와 자신을 그렸다. 잃어버린 고양이에 자신을 투사하고, 동화하며, 퇴행성향의 발튀스에 걸맞는 소녀들이 에로틱한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도 납득이 되는 부분이다. 결국 그는 일본 방문시 통역관으로 일했던 35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 35년의 여생을 보내다가 2001년 사망했다.  


로버트 인디애나: LOVE, EAT, 표지판과 자동차 


로버트 인디애나는 왜 LOVE, EAT와 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쉬타인, 클라에스 올덴버그 등 성공한 팝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인디애나의 작품은 보다 자전적이다. 그에게 유명세를 주었지만, 그 때문에 그림자 속에 남게 된 LOVE 조각은 인디애나의 애정 결핍을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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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뮤지엄 회고전 입구에는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를 연상시키는 남자와 여자의 그림 ‘어머니와 아버지’(1963-66)이 걸려있다. 남자는 늘 떠나는 자동차 앞에 선 아버지, 여자는 상반신이 벗겨진 매춘부 같은 모습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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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Indiana, ‘Mother and Father’(1963-66)


인디애나는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서 버려진 후 입양된 케이스다. 
러나, 정유회사 매니저였던 아버지는 인디애나가 17살 때까지 21번이나 이사를 다녀야할 정도로 유목민 같은 생활을 했다. 부모의 관계도 나빴다. 어머니는 친척의 살인 재판 증인으로 늘 집을 떠나 있었고, 아버지는 혼외정사에 빠졌다. 결국 인디애나가 8살 때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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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이사를 다니면서 소년 로버트 클락의 눈에는 고속도로의 표지판이 두뇌 속에 박혀졌음직 하다.

그의 작품에 표지판과 바퀴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도 어릴 적 이 도시, 저 도시로 이사 다니면서 소년의 눈에 친숙했을 이미지들이 고속도로 표지판과 자동차였기 때문이 아닐까?

인디애나가 알래스카에서 공군으로 복무 중 어느 날 어머니가 암으로 위독했다. 집에 돌아갔을 때 어머니는 “밥 먹었니?”라는 말을 남기고, 5분 후 사망했다. ‘먹다(EAT)’는 ‘사랑(LOVE)’만큼이나 죽고 사는 문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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