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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빈티지 파리 게이 로맨스

쏘리 엔젤 Sorry Angel ★★★☆


칸 영화제, 뉴욕 영화제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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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Angel/ Plaire, aimer et courir vite by Christophe Honoré


*'Sorry Angel' 예고편


록밴드 '퀸(Qheen)'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의 생애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블록버스터가 됐고, 머큐리 추모 공연에서 'Somebody to Love'를 불렀던 팝스타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1963-2016)는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났다. 동성애자로 에이즈의 공포 속에서 살았던 두 수퍼스타들은 짧은 생애 치열하게 사랑했고, 노래했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이제 에이즈는 1980년대처럼 치명적인 병도 아니며, 동성애를 이성애처럼 사랑의 한 방식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최근 칸 영화제에서 성소수자(LGBT, 게이,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수상한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듯 하다. 2013년 레즈비언 로맨스 '파랑은 가장 따뜻한 색(Blue Is the Warmest Colour)'는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은 1930년대 배경의 레즈비언 러브 스토리 '아가씨(The Handmaiden)'로 칸 영화제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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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Angel/ Plaire, aimer et courir vite by Christophe Honoré


지난해 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고, 가을 뉴욕영화제에 초대된 크리스토프 오노레(Christophe Honoré) 감독의 '쏘리 엔젤(Sorry Agngel)'은 199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게이 로맨스다.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 '쾌락과 사랑은 빨리 달린다, Plaire, aimer et courir vite/ Pleasure, love and run fast)'는 다소 철학적이다. 영어권에는 마케팅하기 쉬운 신파조의 제목 '미안해, 천사여(Sorry Angel)'를 달고 개봉된다.


1993년 에이즈 창궐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는 파리의 중년작가 자크(휴 잭맨을 닮은 피에르 들라동샹 분)는 시골 브리타니의 소극장에서 영화과 대학생 아서(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젊은 시절같은 뱅상 라코스테 분)를 만난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를 상영 중인 극장, 어둠 속에서 첫 눈에 반한 이들은 끌림과 당김의 관계에 들어간다. 자크의 생활은 자신이 쓰는 소설처럼 허구스럽다. 한 여인과 사이에 아들 루루(루이스)를 낳아 기르며, 역시 게이인 아파트의 이웃집 아저씨 마티유(데니스 포달리데스 분)과 어울리며 지낸다. 또한,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는 전 애인 마르코(토마스 곤잘레스 분)를 데리고 산다. 말하자면, 자크의 삶은 쉼표는 있을지언정 마침표는 없는 인간관계, 쓰다만 소설 속의 캐릭터들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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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Angel/ Plaire, aimer et courir vite by Christophe Honoré


자크의 자유로운 연애는 죽음이라는 삶의 마침표가 기다리고 있다. 그가 마지막 로맨스를 나누는 아서는 지적이며 감성적인 호기심에 충만해 이성애에 눈뜬 청년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육감적인 아서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 죽음(Death in Venice)'에서 작곡가 구스타프가 반한 소년 타치오를 연상시킨다. 자크 자신이 욕조에서 죽어가는 마르코를 안고 있는 모습은 마치 '피에타'를 떠올린다.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은 자크의 최후를 멜란콜리하게 상투적으로 끌고가지 않는다. 파리의 중년 소설가와 시골의 영화감독 지망생 청년의 랑데부는 사랑이라는 빛과 죽음이라는 어둠을 직조하면서 우리들의 사랑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윈도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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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Angel/ Plaire, aimer et courir vite by Christophe Honoré


셀폰 대신 공중전화로 소통하고,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25년 전의 빈티지 파리와 그 시대의 노스탈자를 자극하는 음악들이 전편에 흐르면서 우리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린다. 파리 밤거리를 배경으로 한 오프닝에 흐르는 "I Believe in One Love"에서 달콤한 샹송같은 "The Shadow of Your Smile", 헨델의 오페라 '아리오단테(Ariodante)'의 아리아가 울리며 자크와 아서의 감정을 울린다. 아서 친구들이 공원에서 합창하는 "Pump up the Volume"이 청춘시대의 상징이 된다. 


오노레 감독은 1993년 당시 풍미했던 영화들과 자신의 영웅들에 오마쥬를 표하고 있다.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 레오스 카락스의 'Boy Meets Girl', 그리고 요절한 독일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감독의 마지막 영화 '쿼렐(Querrelle)'의 앤디 워홀 포스터가 등장하며, 아서는 몽마르트 묘지에 잠든 프랑소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감독을 찾아간다. 기차역에서 아서를 둘러싼 기쁨의 360도 트래킹 쇼트는 배창호 감독이 '깊고 푸른 밤'(1985)의 명장면을 떠올리며, 오마쥬였기를 상상해본다.


아서가 죽어가는 자크의 아파트 앞 공중전화 옆에서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에선 "One"이 흘러나온다. 해탈한듯한 해리 닐슨(Harry Nilsson)의 버전 'One'은 오리지널 'Three Dog Night'의 노래보다 불란서 게이 로맨스에 맞아 떨어진 안성맞춤이다. 노스탈쟈를 자아내는 옛 음악들이 불란서 영화처럼 담백하고, 쿨한 뮤직 비디오같은 것이 '쏘리 엔젤'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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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Angel/ Plaire, aimer et courir vite by Christophe Honoré


"인생엔 영화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많아." "인생은 영화보다 더 바보스러워." 

시골 영화관에서 만난 자크와 아서의 대화다. '쏘리 엔젤'은 시골 출신이며, 동화작가였다가 영화감독이 된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두명의 분신(자크와 아서)을 통해 들려주는 것 같다. 그의 따뜻한 시선을 통과한 사랑과 상실과 고통은 우리에게 열심히 사랑하는며 사는 것이이야 말로 인생 최대의 선물임을 되새기게 만든다. '쏘리 엔젤'은 발렌타인 데이 특선 영화로 2월 14일 맨해튼의 퀴어 영화 전문관 콰드 시네마(QUAD CINEMA)에서 개봉된다. 


QUAD CINEMA
34 West 13th St.  

https://quadcine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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